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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고려인, 역사의 상처가 미래의 소망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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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10-16 | 조회조회수 : 13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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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극동 지역에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한 때는 2014년 12월 성탄 주일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현지 파악을 위하여 극동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던 선교사님을 현지에서 만났습니다. 선교사님 부부는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문화원을 운영하고, 중앙아시아에서 극동 지역으로 돌아온 고려인들을 위하여 농장과 비닐하우스를 마련하여 영농 사업을 돕고 있었습니다. 또한 교회를 개척하여 현지인들을 섬겼습니다. 겨울에 장례식이 나면 땅이 꽁꽁 얼어 장지를 파는 일조차 어렵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아무르강 유역에서는 대한제국의 대신이자 헤이그 특사였던 이상설 선생의 기념물을 보면서, 만주와 러시아를 무대로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선열의 기개를 되새겼습니다.


   지난 10월 초, 교회 창립 41주년을 맞아 사역 중인 선교사님 37분을 초청하여 선교대회를 열었습니다. 그동안의 수고를 위로하고 교제하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극동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님 부부도 참석하셔서, 당시 파송교회를 대표했던 저 역시 반가운 재회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자연스럽게 12년 전 극동 지역을 방문했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특히 잊을 수 없는 곳은 블라디보스토크 역과 신한촌 유적이었습니다. 이곳은 해외 독립운동의 요람이면서 동시에 고려인들의 비극적인 역사가 서린 장소였습니다.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명령으로 연해주에 거주하던 17만 명 이상의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쫓겨났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와 라즈돌노예 등지에서 출발한 강제 이주 열차는 무려 6,000킬로미터가 넘는 고난의 여정을 이어갔습니다. 화물열차에 실려 낯선 땅으로 향하던 수많은 동포가 추위와 굶주림,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살아남은 고려인들은 척박한 중앙아시아의 땅을 일구며 강인한 생명력으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들은 농업과 경제, 교육과 문화의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개척하며 자신들이 정착한 사회에 귀중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놀라운 역사의 반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피눈물을 흘리며 연해주를 떠나 중앙아시아에 흩어져 살던 고려인들이 조상의 나라로 돌아오고 있는 것입니다. 러시아는 물론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지에서 많은 고려인이 한국으로 이주하고 있습니다. 일제의 탄압과 가난을 피해 국경을 넘었고, 이후 강제 이주라는 혹독한 역사의 시련을 겪었던 그들의 3-4대 후손이 이제 조상의 땅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경기도 안산과 인천, 광주광역시, 충남 아산과 천안, 대전 등지에 정착하여 농장과 공장, 다양한 산업현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가족 단위로 이주하여 공동체를 형성하고, 지역사회와 교회에도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많은 고려인이 장기 거주와 영구 정착을 희망한다는 사실은 이들의 귀환이 일시적인 노동력의 이동을 넘어 새로운 이민 공동체의 형성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인구 감소와 지방소멸을 걱정하는 대한민국에 이들의 귀환은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한인 목회를 위해 2002년 미국에 이민하며 자녀들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킨 경험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미국에서 유학 중에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5년 동안 생활했기 때문에 영어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의 한 백인 여교사는 뜻밖의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영어는 걱정하지 말고, 오히려 “한국어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민자의 고유 언어와 문화가 얼마나 소중한 자산인지를 일깨워 준 말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돌아보면서 고려인 동포들을 맞이하는 대한민국도 몇 가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첫째, 고려인들이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적 유산을 보존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한국어 교육과 함께 러시아어를 비롯한 그들의 언어적 능력을 유지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제사회에서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는 능력은 귀중한 자산입니다. 고려인들의 이중언어 능력과 문화적 경험은 한국 사회를 더욱 풍성하게 할 수 있습니다.


   둘째, 고려인들의 귀환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소중한 기회입니다. 그들의 자녀들이 훌륭하게 성장한다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광활한 지역을 연결하는 국제적 인재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국 이민 사회에서 성장한 한인 2세들이 변호사와 전문인으로 활동하며 한국의 대기업과 국제법무법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들은 두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며 소통의 가교가 되고 있습니다. 고려인 후손들도 장차 한국과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훌륭한 인재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려인들의 귀환을 역사적 상처의 치유와 회복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들의 선조는 가난과 국권 상실의 시대에 고향을 떠났고, 낯선 땅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독립운동에 참여하며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왔습니다. 나라를 잃었던 시대에는 우리가 그들을 보호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이 성장하여 그 후손들을 품을 수 있는 여건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고난을 기억하고 돌아오는 동포들을 따뜻하게 환대하는 것은 단순한 이민정책을 넘어 역사적 책임을 다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민의 나라 미국에서 살아가는 저는 대한민국이 고려인 동포들을 비롯하여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이웃들과 함께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모습을 기대와 기쁨으로 바라봅니다. 고국이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존중하면서도 공동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모자이크와 같은 대한민국을 꿈꿉니다. 한때 나라를 잃고 떠났던 동포들의 귀환이 이제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축복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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