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6. 소꿉친구 약혼자 마에카와 다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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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카와의 사랑은 이 말씀의 작은 주석과도 같습니다. 그는 완전한 구세주가 아니었습니다. 그도 병든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통해 아야코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조금씩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권요섭의 연구는 마에카와를 미우라 아야코의 생애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정리합니다.
그는 1920년 6월 30일 아사히카와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아야코의 옆집에 살았으며, 후에 홋카이도제국대학 의학부에 진학했으나 흉부질환으로 요양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권요섭은 마에카와를 아야코의 “소꿉친구에서 약혼자가 된 기독인”이며, 허무주의에 빠져 있던 아야코를 기독교 신앙으로 인도한 “생명의 은인”으로 평가합니다.
“생명의 은인”이라는 표현은 가볍지 않습니다. 마에카와가 아야코에게 준 것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살아도 된다”는 복음의 가능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너 같은 사람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은혜의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길은 없다”고 생각한 사람에게, “길은 이미 있다”는 복음의 희미한 빛을 비추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빙점 해동』은 『길은 여기에』를 미우라 문학을 읽는 열쇠로 삼습니다. 『길은 여기에』의 첫머리에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요한복음 14장 6절의 말씀이 놓여 있습니다. 아야코에게 더 이상 걸어갈 길도, 믿을 진리도, 몸과 마음의 생명도 남아 있지 않던 때, 그 제목은 선언이 됩니다. 길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길은 있었습니다. 아니, 몰랐을 뿐 이미 길은 있었습니다.
그 길은 추상적 교리가 아니었습니다. 그 길은 병상으로 찾아온 한 사람의 사랑을 통해 왔습니다.
그 길은 편지로 왔습니다. 기도로 왔습니다. 눈물로 왔습니다. 그리고 결국 세례의 자리로 이어졌습니다.
아야코는 1952년 7월 5일, 삿포로의대병원의 깁스침대에서 병상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54년 5월 2일, 자신도 폐결핵을 앓고 있던 마에카와 다다시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빙점 해동』은 마에카와의 죽음 앞에서 아야코가 소리 높여 울었지만, 깁스침대에 반듯이 누워 있었기 때문에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지 못하고 옆으로 흘러 귀로 들어갔습니다.
마에카와는 죽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 사랑은 아야코의 신앙 속에 남았고, 문학 속에 남았고, 훗날 『빙점』의 영혼 속에 남았습니다. 그러나 마에카와의 사랑은 『빙점』 바깥에서, 『빙점』 안의 모든 사랑을 심판하는 빛입니다.
그는 사랑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랑으로 한 영혼을 하나님께 데려가려 했습니다.
마에카와 다다시는 단순한 연인이 아닙니다. 그는 미우라 아야코의 생애 속에 나타난 복음의 전령입니다. 병상이라는 가장 좁은 공간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한 인간의 세계를 다시 열 수 있는지를 보여 준 사람입니다.
미우라 아야코는 그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훗날 그런 사랑을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녀의 문학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문학이 되었고, 『빙점』은 일본 사회 속에 원죄와 용서의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되었습니다. 권요섭의 연구는 미우라 아야코가 자신의 집필 목적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으로 공언했으며, 그녀의 작품을 통해 많은 선교적 열매가 맺혔다고 평가합니다.
마에카와는 짧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깊게 사랑했습니다. 그는 오래 살지 못했지만, 한 사람의 영혼 안에 영원히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은 수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작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아가페의 신비입니다. 아가페는 계산하지 않습니다. 아가페는 성과를 재지 않습니다. 아가페는 자기 생명까지 약한 자리에서, 다른 생명을 향해 흘러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랑을 통해 역사를 이루십니다.<계속>
임윤택 교수(선교신학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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