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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5 병상에서 만난 아가페: 마에카와 다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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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9-04 | 조회조회수 : 3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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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절망 가운데 무너질 때,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길입니다. 몸이 무너지면 걸어갈 길이 끊어지고, 마음이 무너지면 살아갈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미래가 하얗게 지워지고, 어제의 죄책이 검은 먹물처럼 번질 때, 영혼은 조용히 중얼거립니다. “이제 길은 없다.”


홋타 아야코, 훗날의 미우라 아야코도 그런 시간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군국주의 교사로서 전쟁을 “성전”이라 가르쳤던 자신을 깨달은 뒤, 그녀는 허무와 죄책 속에 무너졌습니다. 『빙점 해동』은 그녀가 교과서에 먹물을 칠하게 한 사건을 두고, 그것이 아야코에게는 자기 인생에 먹물을 칠하는 일이었다고 해석합니다. 그녀는 치유하기 어려운 공허함과 죄책감을 안고 교직을 떠났고, 이어 폐결핵과 척추 카리에스의 긴 투병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몸은 병상에 묶였고, 마음은 허무에 묶였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믿을 수 있는 것도 없었고, 기대할 수 있는 것도 없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의 이름은 마에카와 다다시였습니다. 『빙점 해동』에 따르면, 1948년 12월 27일, 스물여덟 살의 청년 마에카와 다다시는 아사히카와의 결핵요양소 백운장에 입소해 있던 아야코를 찾아왔습니다. 


그는 17년 전 1년 동안 옆집에 살았던 소꿉친구였고, 홋카이도대학의 우수한 의대생이었으며, 자신도 결핵에 걸려 휴학 중인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자기 생명도 오래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고 느끼던 그는, 결핵 요양 중인 아야코가 술과 담배를 가까이하며 되는대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를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아야코는 그를 반기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기독교인을 싫어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기독교인이 말하는 사랑과 진리와 구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전쟁은 성전이 아니었고, 국가의 말은 진리가 아니었고, 자신이 붙들었던 세계는 무너졌습니다. 그러니 이제 누가 와서 “진리”를 말한다 해도, 그녀는 믿을 수 없었습니다.


『빙점 해동』은 그때 아야코가 마에카와에게 매우 거칠게 반응했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마에카와는 그 거절 속에서 단순한 반항을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 안에 “믿을만한 진짜”를 찾는 목마른 영혼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두 사람은 약 5년 동안 천 수백 통, 전체로는 약 2천 통가량의 편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이 한 영혼에게 다가가는 방식을 봅니다. 복음은 먼저 논증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비난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정죄로 오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한 사람의 끈질긴 사랑으로 왔습니다. 마에카와의 사랑은 감상적 동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생명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또 다른 절망자를 향해 내민 사랑이었습니다. 병든 사람이 병든 사람을 찾아간 사랑이었습니다. 상처 입은 사람이 상처 입은 사람 곁에 앉은 사랑이었습니다. 자기 생명도 위태로운 사람이, 다른 사람의 영혼을 살리고자 한 사랑이었습니다.


이것이 아가페입니다. 아가페는 상대가 사랑스러워서 사랑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상대가 응답하기 때문에 주는 사랑도 아닙니다. 아가페는 상대가 거절해도 찾아가는 사랑입니다. 상대가 무너져 있어도 기다리는 사랑입니다. 상대가 자기 자신을 미워할 때에도,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으신 생명을 보는 사랑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장 8절<계속>


임윤택 교수(선교신학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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