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택 교수의 문학 칼럼] 4. 무릎 꿇은 작가: 미우라 아야코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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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점』의 원죄 인식과 역사적 회개
사람은 글로만 말하지 않습니다. 행동으로 말합니다. 때로는 무릎으로 말합니다. 무릎은 신학의 언어입니다.
무릎 꿇는다는 것은 자기 높이를 낮추는 일입니다. 상대보다 낮아지는 일입니다. 자기 의로움의 갑옷을 벗고, 용서받아야 할 사람의 자리로 내려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무릎은 예배의 자세이면서 동시에 회개의 자세입니다.
미우라 아야코는 글을 쓴 작가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글보다 먼저 무릎으로 말한 사람이었습니다. 『빙점 해동』의 한국어판 서문은 한 장면을 전합니다. 미우라 아야코는 생전에 한국에 가게 된다면 그 나라를 발바닥으로 밟고 걸을 수 없고, 무릎을 꿇고 얼굴을 땅에 대고 기어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미우라의 집을 방문한 한국과 중국 방문객들에게 먼저 머리를 땅에 대고 엎드려,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침략과 폭력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빌고 난 뒤에야 대화를 시작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이 장면은 『빙점』을 읽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빙점』의 “원죄”는 개인의 마음속에만 갇혀 있는 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한 가정의 비밀을 넘어, 한 사회의 어둠을 넘어, 한 민족과 국가의 역사적 죄책까지 비추는 빛입니다.
『빙점』은 한 집안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나쓰에의 흔들린 마음, 루리코의 죽음, 게이조의 복수, 요코의 절망. 표면적으로는 가족 비극입니다. 그러나 그 깊은 곳에는 인간의 원죄가 있습니다. 사랑한다 말하면서 상처 주는 죄. 정의롭다 말하면서 복수하는 죄. 아름답다 말하면서 자기애에 갇히는 죄. 순수하다 생각하면서도 자기 안의 어둠 앞에 무너지는 죄. 하지만 미우라 아야코의 통찰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죄는 개인 안에만 있지 않습니다. 죄는 가정 안에도 있고, 사회 안에도 있으며, 국가 권력 안에도 있습니다.
한 사람이 죄인인 것처럼, 한 시대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한 개인이 회개해야 하듯, 한 민족도 자기 역사의 죄 앞에 서야 합니다.
미우라 아야코는 그것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일본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침략과 폭력을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개인 영혼의 평안으로만 축소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작가였습니다. 그러나 문학을 역사로부터 도피하는 아름다운 방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무릎은 단순한 예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신학적 사건이었습니다. 일본인 작가가 한국사람 앞에 엎드린 일은, 인간의 원죄가 역사적 책임으로 확장될 때 나타나는 회개의 몸짓이었습니다.
『빙점』의 요코는 자기 안에 흐른다고 믿게 된 죄 앞에서 무너집니다. 그녀는 “나는 누구인가”를 묻습니다.
나는 살인자의 딸인가? 나는 죄의 피를 물려받은 존재인가? 나는 용서받을 수 있는가?
그런데 미우라 아야코 자신도 다른 방식으로 이 질문 앞에 섰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전쟁을 “성전”으로 가르친 일본 교사가 아니었던가? 나는 아이들에게 나라와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가르친 사람이 아니었던가? 나는 침략의 역사를 가진 나라의 한 사람으로서 아무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최순육의 연구는 『빙점』을 단순히 전후문학으로만 환원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지만, 미우라가 전쟁 중 군국주의 교육을 수행했고 패전 후 자기 교육 신념이 무너지며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는 점은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이 말은 균형 잡힌 해석입니다. 『빙점』의 원죄는 단순히 일본 전후의 사회심리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미우라의 전쟁 체험과 역사적 죄책은 그 원죄 인식이 자라난 중요한 토양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빙점 해동』의 추천사는 『빙점』을 일본인의 “국화와 칼” 아래 은폐된 민낯, 곧 원죄를 드러낸 문학으로 읽습니다. 그 추천사는 『빙점』이 개인 내면만이 아니라 가정, 사회, 국가 권력에도 작용하는 죄의 빙점을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이 해석은 미우라 문학의 선교적 의미를 잘 보여 줍니다. 복음은 개인의 죄만 다루지 않습니다. 복음은 문명의 죄, 민족의 죄, 역사의 죄까지 비춥니다.
미우라 아야코의 마지막 장편 『총구』도 이 흐름 속에 있습니다. 『빙점 해동』은 『총구』가 전쟁 시대를 묘사하면서 치안유지법의 폭력성과 전쟁으로 기울어 가는 일본의 문제를 날카롭게 추궁했고, 한국인 청년 김준명을 중요한 인물로 등장시켜 민족과 국가의 적의를 이기고 평화를 만드는 인간상을 그렸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빙점』에서 시작된 원죄의 질문이 『총구』에서는 역사와 국가 폭력의 문제로 확장된 것입니다.
미우라 아야코는 “무릎 꿇은 작가”였습니다. 그녀의 문학은 높은 자리에서 인간을 분석하는 문학이 아니었습니다. 낮은 자리에서 인간의 죄를 함께 고백하는 문학이었습니다. 그녀는 죄인을 내려다보지 않았습니다. 자신도 죄인임을 알고 썼습니다. 자신의 민족도 죄책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알고 썼습니다. 이것이 『빙점』을 읽는 한국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특별한 의미입니다.
우리는 미우라를 일본 작가로만 읽지 않아야 합니다. 그녀는 우리에게도 거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피해자의 역사만 가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도 누군가를 미워하는 죄가 있고, 우리 역사 안에도 약자를 외면한 죄가 있으며, 우리 교회 안에도 권력과 성공을 우상화한 죄가 있습니다.
미우라가 한국인 앞에 무릎 꿇었다면, 우리는 누구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까? 부모는 자녀 앞에, 목회자는 성도 앞에, 교회는 상처 입은 세상 앞에, 강한 자는 약한 자 앞에, 가해자는 피해자 앞에, 역사는 기억 앞에 무릎 꿇어야 합니다. 회개는 마음속 감정이 아닙니다. 회개는 몸의 방향을 바꾸는 일입니다. <계속>
임윤택 교수(선교신학자, 미주 장신대학교 선교학 박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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