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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사울 왕의 외줄타기 오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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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7-24 | 조회조회수 : 6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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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격훈련 중 아주 까다로운 훈련의 하나는 ‘엎드려 외줄타기’입니다. 굵은 쇠줄 위에 몸을 비스듬히 얹고 한쪽 발목을 줄에 겁니다. 다른 다리는 힘을 빼고 아래로 늘어뜨려 중심을 잡습니다. 그리고 양손으로 쇠줄을 끌어당기며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 훈련 때 유격 조교들은 반드시 시범과 오시범(誤示範)을 보여줍니다. 성공과 실패의 자세를 함께 보여주어 실수를 줄이는 것입니다. 엎드려 외줄타기에서 흔히 실패하는 이유는 지나치게 긴장하여 몸에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몸이 경직되면 중심을 잃고 뒤집힙니다. 쇠줄 아래에 매달려 전진하는 것이 훨씬 힘들고 위험합니다.

   

고대사회에서 왕이 정치를 하는 것도 외줄타기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전쟁과 반란 속에서 왕이 미숙하거나 지나치게 긴장하면 권력을 과도하게 사용하게 됩니다. 외줄 위에서 균형을 잡고 끝까지 나아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처럼, 이스라엘의 수많은 왕 가운데 정직하고 정의롭게 나라를 다스렸다는 평가를 받은 왕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 대표적 첫 실패 사례가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입니다.

   

사울은 사무엘의 기름 부음으로 왕이 된 후, 통치 초기에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을 암몬 사람에게서 구원하며 혜성처럼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많은 실정을 거듭했습니다. 자신의 사위 다윗을 시기하여 여러 번 죽이려 했고, 다윗을 도왔다는 이유로 놉의 제사장 85명을 학살했습니다. 신접한 자와 박수를 나라에서 제거한 뒤에는 자신이 엔돌의 영매를 찾는 모순에 빠졌습니다. 그는 결국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세 아들과 함께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습니다.

   

사울의 실패를 정치신학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그가 자신의 권한을 넘어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제한 군주제’(limited monarchy)의 질서를 허물어뜨렸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의 요청으로 왕정이 시작되었지만, 이스라엘의 군주제는 고대 근동의 절대군주제와 같지 않았습니다. 왕은 왕정 이전부터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을 따라야 했습니다. 왕정 이전부터 제사장·장로·재판관과 선지자의 권위가 존재했습니다. 왕은 이를 자신의 권력 아래 두는 전제 군주가 아니라 언약 질서를 존중하는 통치자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러한 언약적 권위를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길갈에서 일어났습니다. 블레셋의 대군이 믹마스에 집결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움에 빠졌고, 사울 곁의 백성들도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이 자신이 기대한 때에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자 조급해졌습니다. 그는 스스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사울의 잘못은 단순히 제사의 형식을 잘못 집행했다는 데만 있지 않습니다. 그는 제사를 순종의 표현이 아니라 전쟁의 승리를 확보하기 위한 종교적 수단처럼 사용한 것입니다. 사울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은 “왕이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다”(삼상 13:13)고 그에게 말합니다. 

   

고대 근동의 왕들은 흔히 정치·군사·종교 권력을 함께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은 절대군주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긴급한 상황이라도 왕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거나 종교적 의식을 자신의 판단대로 변경ㆍ시행할 수 없었습니다. 길갈 사건으로 사울이 즉시 왕위에서 쫓겨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왕조가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는 심판이 선언되었습니다.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도 유사한 잘못을 반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하여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아말렉 왕 아각을 살려두고, 양과 소 가운데 좋은 것과 기름진 것을 남겼으며, 가치 없고 하찮게 여겨지는 것만 멸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고 주장하며, 남겨둔 가축도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변명했습니다.

   

사울은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경제적 판단에 따라 수정했습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진멸할지를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종교적 명분까지 덧붙였습니다. 그가 문자적으로 선지자의 직무를 대신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선지자를 통하여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변경한 것은 분명합니다. 이에 사무엘은 선언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2–23).

   

사울의 왕권은 절대왕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언약 아래 있는 왕권이었으며, 왕은 하나님의 부왕(副王, viceroy) 또는 청지기로서 권위를 행사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하여 왕권을 제한하셨습니다. 사울 왕의 잘못된 정치적 행위는 권력 분립의 시대를 사는 현대에도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현시대로 올수록 정치·종교·경제·교육·노동·언론·예술과 같은 여러 영역은 각기 고유한 역할과 자율성을 갖도록 분화되었습니다. 정치는 사회 영역의 질서와 공중 정의를 지켜야 하지만, 모든 영역을 자신의 권력 아래 지배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사울의 실패는 모세오경이라는 언약들로 구분된 영역과 직분의 경계를 무너뜨린 전제적 통치자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왕권을 제한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선지자의 권위를 불편하게 여겼고, 위기가 닥칠 때마다 자신의 판단을 최종적인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정치권력이 경제와 사회, 학교와 노동, 종교와 언론, 학문과 예술의 담장을 허물고 모든 영역을 지배하려 한다면, 외줄 위에서 지나치게 힘을 주다가 중심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사울의 비극은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용맹했고 백성을 결집할 극적 능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권력을 절제하고 자신의 고유한 한계에 머무는 데서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왕권 위에 있음을 자각하지 못하고, 위기가 닥칠 때마다 더 강한 권력으로 문제를 돌파하려 했습니다. 

   

지도력은 엎드려 외줄타기나 서서 외출타기와 같이 정교한 집행을 요합니다. 통치자는 책임을 회피해서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힘을 주어 모든 영역을 장악하려 해서도 안 됩니다. 외줄 위에서 필요한 것은 무한한 힘이 아니라 절제된 힘이며, 빠른 판단만이 아니라 바른 중심입니다. 사울의 오시범은 오늘의 정치 지도자나 경영인과 목회자에게도 경고합니다. 권력이 경계를 넘는 순간, 통치자는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중심을 잃기 시작한 것입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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