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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던지는 자의 실로암] 정교분리의 방화벽이 유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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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6-05 | 조회조회수 : 8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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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신학자 마크 릴라(Mark Lilla)가 지은 『사산된 신』(The Stillborn God)을 읽고 독서 모임에서 토론을 나누었습니다. 홉스 이후 히틀러와 스탈린에 이르기까지 서구 정치신학의 궤적을 정리하고 해석한 책이기에, 소화하기가 쉽지 않은 내용이었습니다.

   

책을 펼치기 전부터 무엇보다 “사산(死産)된 신”이라는 제목이 마음에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죽은 채로 태어나 작은 이불에 싸여 방구석에 놓인 아기의 모습이 연상되었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이 사산되었다고 말했을까”라는 의문이 맴돌았습니다. 과거 역사 속에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철학자도 있었고, “인간이 신을 죽였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는 삶 속에서 하나님을 완강히 거부하는 인간의 도발적인 의지가 느껴지는 발언들입니다.

   

마크 릴라가 이러한 도발적인 제목을 붙인 이유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유럽(특히 독일)을 휩쓴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정치신학을 비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신앙하는 하나님은 인간과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역사의 섭리주이자 구원자이시고, 종말에 천사와 인간을 심판하실 주권자이십니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은 하나님을 합리성과 철학 이론이라는 좁은 보자기 속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마치 죽은 아이를 담요에 싸서 방구석에 방치하듯 말입니다. 결국 그들은 인간을 역사의 주체로 세운 채 독일 부르주아 국가를 신성시했고, 심지어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쟁 광기의 주범인 국가를 찬양하고 지지하는 데까지 나아갔습니다.

   

신학적 차원에서 볼 때, 자유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죽은 신’처럼 취급함으로써 시대에 대한 예언자적 사명을 상실했습니다. 신학자들은 당대의 정치와 문화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고, 참혹한 전쟁마저 “신의 뜻”이라며 수용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 인간 중심적인 신학은 인간의 실존적 불안과 구원에 대한 갈망, 깊은 영적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버려 공허해진 그 자리에, 대중이 히틀러와 무솔리니 같은 ‘거짓 메시아’를 초청하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하면서 독일과 유럽은 하나님의 권세를 대리한다는 전체주의 지도자들의 참혹한 전횡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보자기에 싸여 계시는 ‘사산된 신’이 아니며,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분입니다. 이 오만한 자유주의 신학의 시대에 심판자로 등장한 이가 바로 자유주의 신학자의 제자였던 칼 바르트(Karl Barth)입니다. 그는 1차 대전 이후 대부분의 독일 교회가 정권의 시녀로 전락한 현실을 격렬히 비판했고, 히틀러가 집권하자 결연히 ‘고백교회’ 운동으로 저항하며 일어났습니다. 인간의 합리성과 문화의 일부로 전락했던 자유주의 신학을 파쇄할 뿐 아니라, 전체주의에 대하여도 저항한 것입니다. 반자유주의 신학운동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철저한 초월성과 자유, 그리고 역사를 이끄시는 주도성을 부각하며 ‘신정통주의’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의 기저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있음을 증명한 말씀의 신학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죽은 적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으나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비록 사상가들이 철학과 신학의 세계 안에서 하나님을 죽이거나 사산된 신으로 여겨 강보에 싸서 방치했을지라도, 말씀의 신학자들은 신학의 세계 속에 살아계신 하나님을 다시 선포했습니다. 구원자이자 종말의 구원을 완성하시는, ‘행동하시는 심판자’로서의 하나님 위상을 회복시킨 것입니다. 21세기에 접어든 오늘날, 종교는 세속화의 보자기를 풀고 나와 사회와 문화 다방면에 다시금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건전한 종교가 복지나 윤리적 차원에서 사회에 공헌하는 바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우리가 반드시 조심해야 할 부분도 있습니다. 정치권력은 끊임없이 종교적 권위를 빌려 자신들의 정당성을 인정받고 지지받기를 원하며, 종교 기관은 정치권의 후원과 지원을 통해 교세를 확장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런 점에서 홉스와 로크가 16세기 종교전쟁의 참상을 겪은 후, 정치와 종교 사이에 ‘정교분리’라는 방화벽을 세운 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이 구별의 방화벽이 무너지거나 얇아지지 않도록, 정치와 종교 사이의 건강한 거리 두기, 비판적 감시와 상호 지원, 그리고 영역의 구별과 협력이 섬세하게 관리되어야 합니다. 정교분리의 방화벽이 무너진 사회는 정치의 신성화와 전체주의라는 재앙을 낳거나, 반대로 종교의 정치화와 ‘거룩한 전쟁’이라는 참혹한 비극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목사,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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