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목일기] 죽음 일년 전부터 임종까지 > 칼럼 | KCMUSA

[원목일기] 죽음 일년 전부터 임종까지 > 칼럼

본문 바로가기

칼럼

홈 > 목회 > 칼럼

[원목일기] 죽음 일년 전부터 임종까지

페이지 정보

작성자 | 작성일2026-02-25 | 조회조회수 : 21회

본문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사건처럼 보이지만, 임상 현장에서 오래 지켜보면 그것은 하나의 과정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동일한 죽음의 시간표를 따르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는 1년 전부터 서서히 약해지고, 어떤 이는 몇 주 만에 급격히 나빠져 사망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화의학과 호스피스 돌봄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죽음의 흐름이 있습니다. 죽음은 단절이라기보다 생명의 방향이 서서히 바뀌어가는 여정입니다.


대략 죽음 1년 전쯤, 만성 질환을 가진 이들에게서는 기능 저하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쉽게 피로해지고 체중이 줄며 병원을 자주 방문하게 됩니다. 아직은 움직일 수 있는 몸이지만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이 시기에는 막연한 불안이 자주 동반됩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죽음을 말하지는 않지만, 장기적이고 무리한 계획을 세우는 일에 주저하게 됩니다. 쇠퇴하는 신체로 인해 존재의 감각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죽음 6개월 전쯤이 되면 의학적으로 본격적인 호스피스를 고려하게 됩니다. 의사는 환자가 어떤 치료를 해도 더 이상 호전될 수 없기에 6개월 정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과 함께 호스피스를 추천합니다. 이제 일상생활에서 상당 부분 도움이 필요해지고, 식욕이 떨어지며 근력이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이때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납니다. 이맘때 사람들은 종종 관계를 돌아보려 합니다. 오래 연락하지 않던 가족이나 친구를 찾고, 그동안 마음에 걸렸던 말을 꺼냅니다. 유언을 작성하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내 삶은 과연 의미 있는 인생이었을까? 나는 잘 살아왔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드디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존재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이 이 세상을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위로는 하나님과 주위로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관계적 존재라는 사실을 최종적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죽음 3개월 전쯤에는 활동 범위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침상에 누워 있는 시간이 늘고 수면이 하루 15시간 이상으로 길어지며, 과거의 기억을 더 많이 이야기합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을 본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단순한 섬망으로 설명할 수도 있고 임종 전 경험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의학은 이를 삶의 마지막(end of life) 증상으로 분류하지만, 가족들은 종종 그것을 다가오는 임종 혹은 영적 경험으로 받아들입니다. 해석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삶의 초점이 현재의 세계에서 점점 내세, 곧 죽음 이후로 이동한다는 점입니다.


죽음을 한 달 정도 앞두면 몸이 확실히 소멸해가는 시기입니다. 음식 섭취는 급격히 줄고 체력은 빠르게 감소합니다. 혈압은 낮아지고 맥박은 불규칙해집니다. 드디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제 갈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합니다. 두려움과 평안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어떤 이는 눈물을 흘리고, 어떤 이는 놀라울 정도로 담담합니다. 죽음은 어느 한 감정이 아니라 복합적인 정서가 교차하는 지점이 됩니다. 심지어 신앙심이 깊은 분들도 죽음 앞에서 깊은 정서적 무너짐을 경험하고 우울감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죽음을 앞둔 마지막 일주일은 흔히 임종기(actively dying phase)라고 불립니다. 거의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으며 소변량이 줄고 반응이 매우 느려집니다. 호흡은 깊어졌다 얕아졌다를 반복합니다.


죽음 24시간 전이 되면 사지가 점점 차가워지고 무릎과 발에 보랏빛 얼룩(mottling)이 나타납니다. 말은 거의 사라지지만 청각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임종 시까지 곁에서 말을 건넬 수 있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제일 위로가 되는 말은 "다 괜찮습니다. 잘 사셨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제 편히 쉬십시오. 평안히 가십시오"인 것 같습니다. 죽음 전 마지막 각성기(terminal lucidity)가 흔치 않게 발생하는데, 그때 의외로 많은 이야기를 가족들과 나누게 되고 가족들의 위로에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마지막 한두 시간 혹은 마지막 10분은 의외로 고요합니다. 호흡 사이의 간격이 길어지고 숨을 한참 멈추었다가 깊이 내뱉거나, 목에서 물에 잠기는 듯한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나는데 이는 임종 시 발생하는 호흡기 분비물 때문입니다. 그 후 최종적으로 깊은 숨을 내뱉은 뒤 조용히 멈춥니다. 드디어 돌아가신 것입니다.


죽음은 극적이지 않습니다. 소리 없이, 그러나 무겁게 존재의 방향이 현세에서 내세로 바뀌는 것입니다.


죽음은 생명의 반대말이 아니라 생명의 마지막 장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장면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성찰, 용서, 사랑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삶의 끝에서 업적을 정리하기보다 곁에 있는 사람들을 찾습니다. 결국 인간은 마지막 순간까지 관계적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임종 직전까지 말을 건네고 손을 잡습니다. 죽음은 이 땅에서의 시간을 단축시키지만 우리의 사랑을 지우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사랑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며 마지막 장을 마칩니다.


죽음을 맞이하기 전 1년을 살펴보았습니다만, 당장 내일, 아니 오늘이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다음 세상으로 떠나야 할 우리들입니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인생의 마지막 장을 써 내려가고 싶으신가요?


신동수 목사(병원/호스피스 원목)

  • 이 기사를 공유하세요

KCMUSA,680 Wilshire Pl. #401, Los Angeles,CA 90005
Tel. 213.365.9188 E-mail: kcmusa@kcmusa.org
Copyright ⓒ 2003-2020 KCMUSA.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