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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목일기] "내일이 아닌 오늘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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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작성일2026-02-09 | 조회조회수 : 21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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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병원 온콜(On-call) 근무 중에 만난 한 50대 후반 남성분이 있습니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부인을 면회하러 오신 그분은 제게 조용히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를 꺼내 놓으셨습니다.


7년 전, 18살 꽃다운 나이의 아들을 교통사고로 먼저 보내셨다고 합니다. 이런 날은 더 생각나는 아들. 장남이었고 교회학교 교사를 하던 건실한 아이였대요. 고집스러운 면이 있던 아이이긴 했지만 아픈 엄마 대신 자기와 집안 일을 나눠하던 든든한 아들이었대요. 


"하루도 그 아이가 생각나지 않는 날이 없어요. 아이가 죽고 나서야 사랑한다고 좀 더 말해줄 걸..."이라며 젖어 드는 목소리에서, 우리가 '오늘' 놓치고 있는 자식 사랑의 일면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내식대로 다듬으려 했던 적 혹시 있었는지 자문해 봅니다. 최근 제 마음을 울린 또 다른 어머니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깔끔한 성격에 자기관리도 철저했던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작은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죠. 열여덟 살 아들이 저녁 식사 때마다 여자친구에게 선물 받은 거칠고 색 바랜 티셔츠만 입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이웃들이 자신을 '자식 옷 하나 제대로 못 입히는 엄마'라고 비난할까 봐 매일 아들을 다그치고 외모를 지적했습니다. 사랑해서 하는 소리라고 믿었지만, 식탁에는 늘 싸늘한 긴장감만 감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참석했던 한 워크숍에서 그녀는 '이별 연습하기'라는 특별한 시간을 갖게 됩니다. "만약 내가 내일 죽는다면, 혹은 아들이 내일 내 곁을 떠난다면, 나는 아들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그리고 그녀는 상상 속에서 아들의 장례식을 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자신이 입히기 원했던 반듯한 옷을 입은 모습은 결코 아들이 행복해했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요. 그녀는 비로소 아들의 마지막 길에, 아들이 그토록 아꼈던 그 '색 바랜 티셔츠'를 입혀서 보내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것이 진짜 아들의 삶을 존중하는 길이었으니까요.


그 순간, 그녀에게 뼈아픈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내 아이가 죽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겠구나." 아이가 무엇을 기뻐하고 행복해하는지 수용하지 못했던 자신을 발견하고, 아이가 곁에 없을 때야 비로소 주려 했던 그 '조건 없는 사랑'이 미안해 그녀는 한참을 울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 이제 어떤 티셔츠를 입어도 좋아. 나는 네가 그냥 네 모습 그대로 내 곁에 있다는 게 감사하고 사랑스러울 뿐이란다." 아들에 대한 기대, 남들의 시선이라는 허상을 내려놓자마자 거짓말처럼 아들의 존재 자체가 사랑스러워졌고 행복이 찾아왔습니다.


병원에서 만난 그 아버지도, 이야기 속 이 어머니도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여러분은 지금 곁에 있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계신가요?"


사랑하는 사람과 내일 이별한다면, 오늘이라는 시간은 그저 그 사람이 숨 쉬며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할 것입니다. 오늘 소중한 사람에게 "너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라고 말해보는 건 어떨까요?


신동수 목사 (병원/호스피스 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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