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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에는 사랑방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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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에 살던 고향집을 생각합니다. 시골의 외가를 생각해봅니다. 사랑방이 어디 있었나 되짚어 봅니다. 한국의 전통 주택 중에서 조선시대의 시대정신이 가장 많이 반영된 곳은 바로 사랑채입니다. 장인의 뛰어난 솜씨와 그 가정의 이상과 기풍이 가장 잘 집약되어 드러난 장소가 바로 사랑채입니다. 사랑채란 집의 안채와 따로 떨어져 있는 객실, 즉 게스트하우스를 이르는 말입니다. 가옥의 구조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지만, 문을 들어서면 머슴이 살고 있는 행랑채가 있고, 잘 보이는 곳에 사랑채가 있었고 안쪽으로 안채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랑채가 따로 없는 경우 안방을 뒤로하고 대청마루 건너서 손님을 맞는 곳이 사랑방이었습니다. 사랑방은 안방과는 구별되는 반쯤은 공적인 장소(semi-public place)였습니다. 사랑채 혹은 사랑방은 안채 혹은 안방과 대비되는 사대부들의 공간, 즉 당시의 외부로부터 온 손님들에게 숙식을 대접하는 장소로 쓰이거나, 이웃이나 친지들이 모여서 친목을 도모하고, 집안 어른이 어린 자녀들에게 학문과 교양을 전수하는 장소이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당시의 사대부들이 모여서 학문에 대해 열띤 토론을 하고, 시를 짓거나, 거문고 등의 악기를 연주하며,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한 장소입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선임연구원인 윤일이 박사는 사랑채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사람입니다. 그는 “사랑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그것을 저술로 남기면서, 경상도, 경기 충청도, 전라도 그리고 강원도의 전통주택이 가진 사랑채를 방문하여 연구하였습니다. 그곳에 살고 있는 종가의 후손을 통하여 모두 사랑채의 강력한 기능이 손을 대접함으로 외부와 소통하고, 문화적인 교류를 하였음을 조사하였습니다. 맹사성이라는 조선시대 초의 정승은 사랑채로 찾아오는 과객들을 빈부를 막론하고 깍듯이 모셨다고 하니 그 인자함과 후덕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향한 조선의 인심은 사랑채 혹은 사랑방에서 보여준 인심이었고, 조선 사람들의 외부와의 소통의 채널은 바로 사랑방 대화였습니다. 과객이 머물다 가는 곳인 이 사랑채에서 손 대접을 하는 숫자가 그 집안의 명예였고, 그들을 대접하는 깍듯함이 그 가문의 자긍심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도 사랑방이나 사랑채가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엘리사가 다니는 길인 “수넴”이라는 동네에 늘 엘리사를 기쁨으로 대접하고, 사랑방을 만들어 유숙하게 한 부부가 있습니다. 이 ‘사랑방’에 감동한 엘리사는 그 집의 나이든 부부를 위하여 한 아들을 얻게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 이름을 알 수 없는 부부는 손 대접을 하는 선행으로 아이를 얻고, 또 병들어 죽은 어린 아이를 다시 살리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합니다.

   당회와 선교이사회는 선교관 즉 선교사를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구입하려는 역사적인 일을 결정하여 시작합니다. 이 사랑채를 얻는 일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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