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 서신 야고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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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통 속에서 아름다운 장미꽃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온갖 지저분한 지푸라기 속에서 보석을 얻을 수 있을까요? 가치 없는 돌무더기 속에서 다이아몬드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위대한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야고보서가 “지푸라기 서신(書信)”이라고 경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가장 큰 강조점을 두는 책이라고 해서, 루터가 낮추어본 이 서신서가 선한 것을 가지고 있을까요?
마르틴 루터가 이 서신을 비판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이 서신서가 복음과 그리스도에 대하여 크게 부각시키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이 서신이 사도에 의하여 쓰인 것이라고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셋째로는 행위를 강조함으로 행위에 의하여 구원받는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루터는 야고보와 바울을 조화시키기 어렵다는 이유로, 율법과 행위를 뒤섞어놓는다는 이유로, 그리고 야고보가 성경의 정신을 침해하고 있다는 이유로 지푸라기 서신이라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 이 서신이 들어간 것은 과연 실수일까요? 성경은 구원받는 방법만 가르치는 책이 아닙니다. 야고보서는 독특한 책입니다. 오히려 이 서신은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의 속 내용을 잘 지켜주고 보호하는 윤리, 즉 신앙적 삶의 틀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신앙”(faith) 보다는 신앙의 실천인 “윤리”(ethics)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너무도 필요한 가르침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는 사람들이 절제 없이 마구 살아감으로, 신앙을 값싸게 만들거나 믿음에서 속히 떠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인데 그는 이 편지를 쓸 당시 예루살렘교회의 대표적 지도자였습니다. “주의 형제 야고보”(갈 1:19)는 주후 44-49년 사이에 예루살렘 교회에서 이 서신을 썼으며,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로 표현되는 신약교회의 성도입니다. 이 편지는 공동서신에 속하며, 여러 사람에게 돌려졌던 회람서신입니다. 고난 받는 시대에 참된 신앙이라는 것은 단지 지식이 아니며, 반드시 실천과 행동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생명력 있는 관계라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은 확증되어야 합니다. 내가 과연 천국 백성입니까, 아니면 무늬만 그리스도인입니까?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우리는 시험과 연단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산 믿음임을 확증하여야 합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야고보서는 산 믿음을 요청하는 신약성경의 선지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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