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굳 프라이데이(Good Friday)”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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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중에서 가장 종교적인 때는 종려주일에서 부활주일에 이르는 기간입니다. 우리는 이 기간을 고난주간이라고 말합니다. 이 고난주간 중에서도 가장 절정에 해당하는 비극적인 날은 성금요일입니다. 이 날을 우리는 “굳 프라이데이”(Good Friday)라고 말합니다. 이 성금요일에서 부활주일 사이의 기간은 가장 종교적이고 가장 영적으로 극적인 때입니다.
성금요일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로서 가장 비극적인 날인데, 왜 우리는 이 날을 “좋은 금요일” “굳 프라이데이”(Good Friday)라고 부를까요. 오히려 “배드 프라이데이”(Bad Friday)라고 불러야 되지 않을까요? 독일에서는 이날을 “슬픔의 금요일”(Sorrowful Friday)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어원이나 표현은 어떠하든지 “좋은 금요일,” “굳 프라이데이”라는 말은 충분히 놀라운 복음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날은 외견상 더할 수 없는 비극의 날입니다.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죽어야 하는 것은 비극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악한 인간의 판결로 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것은 역설입니다. 창조자가 피조물의 손에 죽는다는 것은 추문 중의 추문입니다.
굳 프라이데이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좋은 날입니다. 죄인인 인간을 위하여 창세기 3:15에 예언된 사건이 이루어진 날입니다. 사탄의 정수리를 깨뜨려 그들의 모든 무장을 해제하고 무력화시킨 날입니다. 이날은 인간의 모든 죄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시고, 더 이상 인간에 대한 소유권을 청구할 수 없게 만든 영적인 승리의 날입니다. 더구나 이 하나님의 승리는 부활이라는 절정으로 이어집니다. 죄에 대한 값을 모두 십자가에서 지불할 뿐 아니라, 이제는 그 죽음을 생명으로 극복하여 죄의 삯인 사망을 이긴 날이 되었습니다.
복음은 “좋은 소식”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의 소식이 있기 전 모든 죄인이 죽을 수밖에 없다는 “나쁜 소식”이 먼저 있었습니다. 이 나쁜 소식, 이 실패와 저주의 소식을 가져온 사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소식은 구원의 실패가 아니라 구원의 성공이자 구원을 위하여 죄 값을 모두 지불한 사건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의 죄에 대한 저주와 심판은 오직 그리스도에게 쏟아졌으며,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용서를 획득하게 되었습니다.
피 묻은 성금요일이 이처럼 선하고 좋은 금요일이 된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하나님의 정의도 하나님의 속죄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세상을 너무 사랑하시어 예수를 주심 없이 인간을 그대로 받았다면, 하나님은 더 이상 선할 수도 정의로울 수도 없습니다.
좋은 금요일과 부활절을 통과하는 성도들에게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워하여야 할 존재는 아닙니다. 죽음이 세상의 끝이라면 인간은 비참하고 기독교는 허구일 것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가 아닐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서 우리는 죽음이라는 세상의 우상을 이긴 영원한 생명을 노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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