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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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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아버지는 내게 하나님에 가까운 능력자였다. 살구나무에 함빡 달린 살구를 따 먹을 수가 없어서 고무신을 나무로 던졌다. 어쩌나 신발짝에 맞은 살구가 떨어지면 바지에 비벼 흙을 털고는 입에 넣었다. 어렵게 살구를 따는 나에게 다가온 아버지께서는 살구나무를 발로 차셨다. 수십 개의 살구가 비처럼 떨어져 내렸다. 이 황홀함!  밭에 도랑에 땅바닥에 이렇게 많이 떨어진 살구를 줍는 것은 천국이었다.

   어느 날인가 개밥그릇에 흙을 담고 도랑가에서 땅강아지를 잡아 그 흙에 파묻는 놀이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큰 삽으로 나를 이끌고 가서 도랑 둔덕을 뒤집으시니, 감당할 수 없는 여러 마리의 땅강아지가 나왔다. 그것을 작은 그릇에 집어넣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 능력자이신 아버지는 대청마루에 드러누워서 어린 나의 몸통보다 열 배나 굵은 대들보를 바라보면서, “아들아 네가 종손이니 이 집안의 대들보이다”라며 종종 격려하셨다.

   그러시던 “능력”의 아버지께서 고교 시절 어느 날 눈물을 흘리셨다. 평소에 별로 말이 없으시던 아버지께서 그날은 말씀도 많으셨고 눈물이 흥건하셨다. 밖에서 무슨 말을 들으셨는지, 무슨 마음의 괴로움이 있으셨는지는 모른다. 곁눈으로 아버지께서 흘리는 눈물을 내가 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고 마지막이었다. 그 눈물의 이유는 “능력이 없어서 아이들을 위하여 제대로 투자하지 못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와 부모님을 축복할 때마다 “마음껏 자녀를 위하여 투자하게 해 달라”는 내 기도는 내 아버지의 눈물이 내 마음에 떨어져 마르지 않은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당시 사춘기였던 나는 그 눈물이 아버지의 약한 모습인 것 같아서 괜히 기분이 나빴다. 우연히 방문했던 외삼촌은 “아버지의 눈물은 숭고한 것”이고 “네가 기분 나빠야 할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6.25 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신 참전용사였다. 전쟁을 마치고 돌아와 결혼을 하시고 가정을 이루셨다. 그 시절의 거의 모든 아버지들이 그러하듯이, 아버지는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아이들을 기르고 가정과 직장을 위하여 봉사하셨다. 아버지는 고향 안성에서 평택으로 강원도로 서울로 이주를 하시면서 성실하게 일하셨다. 70 중반이 되시기까지 계속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일하셨다. 지금은 은퇴 이후 학생이나 되신 것처럼 말쑥하게 차려입고, 날마다 구청의 경로대학에 나가셔서 서예, 탁구, 일본어 등을 배우신다.

   나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의 세대를 “건설자의 세대”(builder’s generation)라고 말하고 싶다. 잿더미에서 집을 짓고, 도로를 깔고,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길렀다. 많지 않은 일자리를 찾아서 전전하였으며, 눈물 젖은 밥을 먹고, 아이들을 향하여 한숨을 지으면서 살던 이 시대의 은인들이다. 전쟁의 총알과 포연 사이를 헤치고 나와, 눈물로 가정과 세상을 건설하신 우리의 아버지 세대를 향하여 한없는 존경과 사랑을 보내고 싶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님의 눈물이 우리를 지켰습니다!  님의 눈물이 우리를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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