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민족은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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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에서 섬기기 위하여 4명의 가족이 글렌데일에 도착하여, 약 2주 동안 지낸 집은 사랑하는 김영복 권사님의 아파트였습니다. 추억에도 선한 김창도 장로님의 서재에서 지내면서, 우연히 빼들어 조금씩 읽은 소설은 나중에 신부가 되어 북미주 캐나다에서 목회한 고마태오 신부님의 자전소설 “예수 없는 십자가”였습니다.
그 소설에는 6.25전쟁 내내 해병대 전투요원이 되어 유명한 전쟁을 치른 고종욱(마태오) 중사의 체험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미군정찰기가 고사포에 맞아 소양강 지역으로 떨어졌습니다. 25명의 해병 특공대가 결성되어 이 부상당한 조종사를 구하기 위하여 보트를 타고 북쪽으로 넘어갑니다. 중사는 포로로 잡은 북한 장교도 데리고 오다가 북의 사격으로 고무보트가 가라앉습니다. 소양강을 헤엄쳐 건너는 중에 부상한 조종사와 부상한 북한 장교가 물에서 허우적거렸습니다.
죽어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야 할 궁지에 몰리게 되었던 마태오 중사는 사상의 동지이며 조국의 은인인 그 미해병 비행사보다는 적이긴 하지만 피를 같이 한 동족을 선택했습니다. 중사는 동족을 살리고 목표와 임무이기도 했던 미조종사를 포기한 것입니다. 엄청난 비난과 심문이 작전 장교와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마태오 중사는 작전관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와 같은 조상과 언어와 문화를 갖고 있는 동족이며, 우리가 통일시켜야할 조국의 아들인 동시에, 또한 우리의 형제입니다. 작전 장교님! 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사상은 변할 수 있어도, 그 몸에 흐르고 있는 피는 영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작전장교도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통역장교를 통해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미군 고문관 장교가 “알겠다, 이해할 수 있다”고 고개를 끄떡여 주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합니다. 우리의 동족인 북한에 행복이 없는 한, 우리의 행복은 온전한 행복이 아닙니다. 동방의 예루살렘이었던 평양이 우상과 인본주의에서 해방되지 않는 한, 엄밀한 의미에서의 광복은 임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땅에 다시 교회당 종소리가 울려 퍼지지 않는 한, 우리 민족의 기쁨과 성취는 부분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민족은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복음을 알게 된 바울에게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 복음을 모두 믿어야 할 동족 유태인이 불신앙에서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사랑하기에 가장 마음 아픈 사도 바울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바울의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마음의 고통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다고 하여도 원하는 바로다”(롬 9:3). 자기 백성을 위하여 저주의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마음이 바로 민족을 사랑하는 바울의 마음입니다. 민족의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하여 전도하는, 선교하는 마음이 바로 이 십자가의 마음입니다.
그 소설에는 6.25전쟁 내내 해병대 전투요원이 되어 유명한 전쟁을 치른 고종욱(마태오) 중사의 체험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미군정찰기가 고사포에 맞아 소양강 지역으로 떨어졌습니다. 25명의 해병 특공대가 결성되어 이 부상당한 조종사를 구하기 위하여 보트를 타고 북쪽으로 넘어갑니다. 중사는 포로로 잡은 북한 장교도 데리고 오다가 북의 사격으로 고무보트가 가라앉습니다. 소양강을 헤엄쳐 건너는 중에 부상한 조종사와 부상한 북한 장교가 물에서 허우적거렸습니다.
죽어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면서 한 사람을 선택하여야 할 궁지에 몰리게 되었던 마태오 중사는 사상의 동지이며 조국의 은인인 그 미해병 비행사보다는 적이긴 하지만 피를 같이 한 동족을 선택했습니다. 중사는 동족을 살리고 목표와 임무이기도 했던 미조종사를 포기한 것입니다. 엄청난 비난과 심문이 작전 장교와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마태오 중사는 작전관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와 같은 조상과 언어와 문화를 갖고 있는 동족이며, 우리가 통일시켜야할 조국의 아들인 동시에, 또한 우리의 형제입니다. 작전 장교님! 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사상은 변할 수 있어도, 그 몸에 흐르고 있는 피는 영원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작전장교도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통역장교를 통해 그의 말을 듣고 있던 미군 고문관 장교가 “알겠다, 이해할 수 있다”고 고개를 끄떡여 주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합니다. 우리의 동족인 북한에 행복이 없는 한, 우리의 행복은 온전한 행복이 아닙니다. 동방의 예루살렘이었던 평양이 우상과 인본주의에서 해방되지 않는 한, 엄밀한 의미에서의 광복은 임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땅에 다시 교회당 종소리가 울려 퍼지지 않는 한, 우리 민족의 기쁨과 성취는 부분적인 것입니다. 우리의 민족은 어디에 있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복음을 알게 된 바울에게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 복음을 모두 믿어야 할 동족 유태인이 불신앙에서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사랑하기에 가장 마음 아픈 사도 바울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바울의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마음의 고통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다고 하여도 원하는 바로다”(롬 9:3). 자기 백성을 위하여 저주의 십자가에 달린 예수의 마음이 바로 민족을 사랑하는 바울의 마음입니다. 민족의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하여 전도하는, 선교하는 마음이 바로 이 십자가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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