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신앙을 회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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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신앙을 회복하라
한국에서 학위를 받으러 오신 몇몇 목사님을 모시고 그랜드 캐년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행버스를 탄 모든 사람들이 가이드의 인도에 따라서 돌아가면서 소개를 했습니다. 한 연로한 목사님이 소개를 하는 시간에 이르러 자신의 소개를 잘 하시고 난 후, 다 같이 “내게 강 같은 평화”를 부르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든 사람들이 이 복음송을 불렀습니다. 저는 버스에 탄 대부분의 사람들이 찬송 부르는 것을 보고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한 편으로는 불안하였습니다. 소수의 불신자가 이를 불편하게 생각하면 어떠할까 조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공격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종종 사회에서 타종교의 상징물과 건물을 손상시키는 것을 봅니다. 단군상의 목을 베어버린 일 때문에 감옥생활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장승을 톱으로 잘라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인도의 사찰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찬송을 부른 사람이 있습니다. 티벳의 수도 랏사를 방문하였을 때, 우리를 인도하신 분이 티벳의 포탈라 궁을 아래에 두고 산꼭대기에서 통성기도를 하자고 제안하여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변의 사찰 가까이에서 하려는 것을 만류하여,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 기도하고 찬양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종교인들의 마음을 불편하지 않게 하려는 때문이었습니다. 현 시대 속에서 타종교의 상징물인 불상을 훼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예수상이 다른 사람에 의하여 훼손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다종교 사회가 되었습니다. 미국을 건국한 건국의 아버지들은 청교도가 영국의 국교 제정에 의하여 많은 핍박을 받았기 때문에, “국교를 정하지 않는다”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천명하였습니다. 공적인 영역에서 십자군 전쟁과 같은 “승리주의”(triumphalism)의 시각으로 행동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입니다. 가나안 정복이나 기드온과 같은 방법으로 타종교를 공격하는 것은 문화적 다원주의시대에 걸맞는 행동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신정(神政, theocracy)의 맥락 속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적 신앙(公的 信仰, public faith)이란 이처럼 다원화된 사회에서 주변의 사람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신자의 노력을 말합니다. 교회 밖에서도 우리는 사랑과 배려의 정신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더욱 불신자를 대할 때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함으로 소통의 차단을 배격하여야 합니다. 위화감을 주는 언행은 더욱 피하여야 합니다. 세상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가짐으로 교회가 사회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고 있음을 보여야 합니다. 한국의 초대교회가 사회적 리더십을 가졌고 부흥이 된 이유는 그들의 인식과 실천이 교회의 내부에 한정되지 않고 공적인 영역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민족을 사랑하는 자는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이 공적 신앙이 회복되어질 때, 개신교는 다시금 부흥의 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 학위를 받으러 오신 몇몇 목사님을 모시고 그랜드 캐년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행버스를 탄 모든 사람들이 가이드의 인도에 따라서 돌아가면서 소개를 했습니다. 한 연로한 목사님이 소개를 하는 시간에 이르러 자신의 소개를 잘 하시고 난 후, 다 같이 “내게 강 같은 평화”를 부르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든 사람들이 이 복음송을 불렀습니다. 저는 버스에 탄 대부분의 사람들이 찬송 부르는 것을 보고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한 편으로는 불안하였습니다. 소수의 불신자가 이를 불편하게 생각하면 어떠할까 조심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공격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종종 사회에서 타종교의 상징물과 건물을 손상시키는 것을 봅니다. 단군상의 목을 베어버린 일 때문에 감옥생활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장승을 톱으로 잘라버린 사람이 있습니다. 인도의 사찰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찬송을 부른 사람이 있습니다. 티벳의 수도 랏사를 방문하였을 때, 우리를 인도하신 분이 티벳의 포탈라 궁을 아래에 두고 산꼭대기에서 통성기도를 하자고 제안하여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변의 사찰 가까이에서 하려는 것을 만류하여, 사람이 없는 곳에 가서 기도하고 찬양한 적이 있습니다. 다른 종교인들의 마음을 불편하지 않게 하려는 때문이었습니다. 현 시대 속에서 타종교의 상징물인 불상을 훼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예수상이 다른 사람에 의하여 훼손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다종교 사회가 되었습니다. 미국을 건국한 건국의 아버지들은 청교도가 영국의 국교 제정에 의하여 많은 핍박을 받았기 때문에, “국교를 정하지 않는다”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천명하였습니다. 공적인 영역에서 십자군 전쟁과 같은 “승리주의”(triumphalism)의 시각으로 행동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입니다. 가나안 정복이나 기드온과 같은 방법으로 타종교를 공격하는 것은 문화적 다원주의시대에 걸맞는 행동이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신정(神政, theocracy)의 맥락 속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적 신앙(公的 信仰, public faith)이란 이처럼 다원화된 사회에서 주변의 사람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신자의 노력을 말합니다. 교회 밖에서도 우리는 사랑과 배려의 정신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더욱 불신자를 대할 때는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함으로 소통의 차단을 배격하여야 합니다. 위화감을 주는 언행은 더욱 피하여야 합니다. 세상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가짐으로 교회가 사회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고 있음을 보여야 합니다. 한국의 초대교회가 사회적 리더십을 가졌고 부흥이 된 이유는 그들의 인식과 실천이 교회의 내부에 한정되지 않고 공적인 영역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민족을 사랑하는 자는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이 공적 신앙이 회복되어질 때, 개신교는 다시금 부흥의 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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