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를 다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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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가 불교나 구교보다도 신뢰를 받지 못하는 본국의 상황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개혁을 기치로 들고 시작된 개신교의 역사가 왜 개혁과 청산의 대상이 되는데 이르렀는지 생각하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단이나 반기독교적인 성향도 문제이지만, 현대 한국교회의 심각성은 교회가 자신의 선한 본질을 잃어가는 것에 있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왕의 치적이 가득하게 적힌 기념비 오벨리스크처럼, 그리스도의 기념비가 되어야 할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딤전 3:15)가 그리스도를 온전히 드러내 보이지 못하는 것이 더 심각한 일이 아닙니까? 증인된 교회가 부패하고 타락하고 부도덕한 상태에 떨어지는 것처럼 교회 자신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 한국교회에게 주신 시험이라도 감당치 못할 시험은 없다고 믿습니다. 우리에겐 종교개혁으로 물려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있습니다. 이즈음에 복음으로 시대를 정화시키고 개혁하였던 청교도의 교훈과 개혁을 다시 생각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청교도(Puritan)란 1560년대부터 1700년까지 스코트랜드와 잉글랜드 및 신대륙 아메리카에서 생긴 신앙운동을 주도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이 운동은 당시의 타락한 시대를 개척한 복음운동으로서, 교회의 청결운동과 사회개혁운동을 포함합니다. 그들은 종교개혁으로 시작된 교회를 철저히 개혁하자는 의도를 가졌으며, 영국의 국교도 속에서도 “종교개혁의 갱신(更新)”(reforming of Reformation)을 주장하였습니다. 이를 위하여 그들은 성경적인 가르침으로 돌아갈 것을 끊임없이 주장하였으며, 통치자의 권위적 결정보다는 사회적 합의와 계약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청교도 운동은 무엇보다도 영국의 하부귀족에 속하는 “젠트리”(紳士, gentry) 출신의 평신도들과 그 계층에서 나온 목회자들이 말씀운동을 일으키면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신사(gentleman)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습니다. 이 운동은 가정, 결혼으로부터 시작된 청결운동에서 교회와 사회의 갱신운동으로까지 발전하고, 결국 정치적인 영향력까지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들의 개혁 목표는 영국의 교회와 사회를 윤리적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이었으나, 그 영향력은 청교도 혁명으로 발전하여 영국의 군주제를 입헌군주제로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청교도 운동은 무엇보다도 말씀 사랑 운동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청교도의 핵심은 말씀에 대한 사랑과 순종에 있었고, 이는 가정, 마을, 직장, 군대, 교회 등으로 들어가 이전의 부패하고 타락한 상황을 개혁하려는 노력으로 구체화됩니다. 거룩에 대한 청교도의 열정은 가정 공동체의 순결성을 법적으로 규정하려고 하였고, 나아가 교회와 국가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할 공동체임을 담대히 주장하였습니다. 세속화에 물든 이 시대의 기독교를 향하여 청교도들은 하나의 대안을 보여줍니다. 이 운동은 심령운동에서 그치지 않고 세계관적 차원의 기독교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이 시대 손가락질 받는 기독교에게 새로운 활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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