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룟 유다가 구원 받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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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3:1-8)
청년시절의 일입니다. 친구에게 당혹스런 질문을 받았습니다.“가룟 유다가 구원받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셔야 할 분이니까, 가룟 유다는 악을 행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을 도운 것이라는 논지였습니다. 조금 혼란스러웠습니다. 가룟 유다가 구원받지는 못했을 것 같은데, 논리적인 반박을 어떻게 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수년전에 발견되어 매스컴에서 한 동안 거론된 영지주의 문서 “유다복음서”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예수님과 유다가 교묘하게 계획하여 이룬 일이라는 내용입니다. 아울러 이러한 주장은 로마서 3장 7절에 소개되는 유대인의 주장과도 유사합니다.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우리가 거짓을 말하는 잘못으로 하나님의 진리가 더욱 크게 드러난다면 우리를 나무라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판단은 부당한 것 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아무래도 좋다’는 주장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실수가 결과적으로 유익이 되었다고 해서 그 실수를 잘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유대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거부한 것이 결과적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지는 놀랍고 유익한 일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을 핍박하고 불신한 그리고 십자가에 주님을 못 박아 죽인 행위를 의롭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을 핍박하여도 복음이 전해졌더라면, 주님을 유대인이 전폭적으로 지원하여 전파하였다면 얼마나 더 큰 역사가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의 행한 대로 심판하십니다. 선을 행한 사람에게는 복을 주시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심판으로 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잘못했는데도 복을 주신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의로운 심판을 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종종 우리의 잘못도 하나님께서는 선을 위하여 사용하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성숙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실수와 죄를 이용하여서 선하게 사용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와 지혜의 열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다시 유다로 돌아가겠습니다. 그가 구원의 복을 받았을까요? 절대적으로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차라리 나지 않은 것만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제자단에 맡긴 돈을 훔쳐가는 도적이었습니다. 스승을 한 사람 성인 노예 값으로 계산하여 팔아먹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한 패륜아입니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회개하여 하나님과 그리스도 앞에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는 자살을 택하여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합니다. 하나님은 악을 이용하셔서 선을 이루기도 하시지만, 사람은 삶의 이상인 “선한 과정과 선한 결과”를 함께 추구하여야 합니다.
청년시절의 일입니다. 친구에게 당혹스런 질문을 받았습니다.“가룟 유다가 구원받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셔야 할 분이니까, 가룟 유다는 악을 행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을 도운 것이라는 논지였습니다. 조금 혼란스러웠습니다. 가룟 유다가 구원받지는 못했을 것 같은데, 논리적인 반박을 어떻게 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수년전에 발견되어 매스컴에서 한 동안 거론된 영지주의 문서 “유다복음서”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예수님과 유다가 교묘하게 계획하여 이룬 일이라는 내용입니다. 아울러 이러한 주장은 로마서 3장 7절에 소개되는 유대인의 주장과도 유사합니다.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우리가 거짓을 말하는 잘못으로 하나님의 진리가 더욱 크게 드러난다면 우리를 나무라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판단은 부당한 것 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결과가 좋으면 과정은 아무래도 좋다’는 주장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실수가 결과적으로 유익이 되었다고 해서 그 실수를 잘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유대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거부한 것이 결과적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지는 놀랍고 유익한 일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을 핍박하고 불신한 그리고 십자가에 주님을 못 박아 죽인 행위를 의롭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주님을 핍박하여도 복음이 전해졌더라면, 주님을 유대인이 전폭적으로 지원하여 전파하였다면 얼마나 더 큰 역사가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의 행한 대로 심판하십니다. 선을 행한 사람에게는 복을 주시고,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심판으로 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잘못했는데도 복을 주신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의로운 심판을 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종종 우리의 잘못도 하나님께서는 선을 위하여 사용하십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성숙을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실수와 죄를 이용하여서 선하게 사용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와 지혜의 열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다시 유다로 돌아가겠습니다. 그가 구원의 복을 받았을까요? 절대적으로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차라리 나지 않은 것만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제자단에 맡긴 돈을 훔쳐가는 도적이었습니다. 스승을 한 사람 성인 노예 값으로 계산하여 팔아먹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한 패륜아입니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도 회개하여 하나님과 그리스도 앞에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는 자살을 택하여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합니다. 하나님은 악을 이용하셔서 선을 이루기도 하시지만, 사람은 삶의 이상인 “선한 과정과 선한 결과”를 함께 추구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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