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함으로 정의를 이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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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오랜 전에 중국에서 살고 있는 친구의 아내와 함께 저의 부부가 시장에 갔습니다. 상인이 “100원”이라고 하는 물건을 “10원”이라고 하는 친구 부인을 보면서 머리가 좀 어지러웠습니다. 중국 상인은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게 “40원”이라고 소리치고, 친구의 아내는 “지난번에 10원에 샀다”고 계속 주장하였습니다. 우리가 가겠다고 하니, 결국 장사가 그 물건을 “10원”에 주었습니다. 다시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미국에서도 종종 판매원에게 가격을 어느 정도 융통성 있게 맡겨서 팔도록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통계적으로 조사를 하여보니, 주로 백인 남성들이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흑인, 히스패닉계 사람들, 그리고 유색인종 중 여성이 가격을 비싸게 주고 사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어서 영어로 충분하게 의사표현을 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논지를 일관되게 주장할 논리도 부족함으로, 어느 정도 손해 보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주인은 이러한 보이지 아니하는 인종적 차별을 예리하게 간파하고, 스스로 정찰제를 실시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찰제는 같은 물건을 누구에게나 같은 값에 팔게 만듭니다.
이러한 삶의 구체적인 부분을 놓친다고 해서, 구원받은 사람의 구원이 상실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행위구원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큰 구원을 경험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위에서 이루신 정의와 사랑을 날마다 우리의 삶에서 실천하는 것을 게을리 할 수는 없습니다. “구원은 이미 따놓은 것이니 마음대로 살아도 괜챦다”는 태도는 구원받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의로움을 입혀주셨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의로움을 닮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고린도 후서에는 정의(righteousness), 즉 “디카이오쉬네”라는 말이 7번이나 나옵니다. 고후 5:21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죄인이 되게 하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려는 것이며, 고후 6:14은 의가 불의와 함께 섞일 수 없다고 하면서, 불법에 대조되는 의를 말합니다. 믿는 사람들은 고후 3:9, 고후 11:15의 말씀처럼 의의 직분을 가진 의로운 일꾼이 됩니다. 그들은 고후 6:7에서처럼 의의 병기가 되면, 고후 9:9-10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선한 행실을 가지게 된다고 합니다.
의로움을 받은 사람들, 곧 칭의를 체험한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새 생명의 능력을 얻습니다. 복음은 이론이 아니라 능력입니다. 성령의 의롭게 하시는 역사는 우리를 작은 삶에서 무수한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의롭게 된 자는 반드시 의를 위하여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의로운 생활 윤리는 의무가 아니라 이제는 은혜에 대한 우리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십자가이고, 우리의 의는 선행입니다. 우리의 선행은 십자가를 통해 성취된 칭의의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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