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에 굴복하지 않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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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 동네사람과 가족의 무리로부터 떨어졌습니다. 하루가 지난 뒤에야 예수님의 부모는 아들이 행방불명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사흘 후에야 예수님의 부모님은 성전에서 12살 난 예수가 선생들에게 묻기도 하고 듣기도 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걱정하시던 어머니는 예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눅 2:48).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을 향하여 일종의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책망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른 논리로 이에 대답합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였나이까”(눅 2:49)? 보통 어린이 같으면 ‘어머니 미안해요’라고 말하는 것이 바른 태도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무죄하신 예수님이 어머니에게 이처럼 대답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제 아이 예수는 어머니 슬하에서의 순종에서 점차 벗어나 하나님의 소명을 깨닫는 성숙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부모님이 제시하는 관점과 기준을 쫓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의 관심을 충족시키려는 새로운 기준을 가지게 되셨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순종하시던 예수님께서 점차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는”(2:52)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시는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은 두 종류의 죄책감을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첫째는 인간관계에서의 죄책감이며, 둘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죄책감입니다. 성숙한 신자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인간관계만 생각하고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으면, 미성숙한 신자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하나님과의 관계만 생각하고 인간관계를 무시한다 하더라도 미성숙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사랑과 인간사랑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며, 이 둘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것이 우리가 고려할 바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둘이 부딪힐 때입니다. 그 때 성숙한 신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우선적으로 고려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사명감을 가지게 된 예수님은 그 후 십자가에서 어머니의 아픔을 바라보면서 사도 요한에게 어머니에 대한 배려를 부탁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 어머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을 아셨지만,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스런 십자가에서도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를 향한 인륜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우선과 차선이 무엇인지 아시고,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는 예수님은 관계의 달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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