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가장 성숙한 지혜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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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것은 일종의 과정입니다. 한 번에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종의 “발전과정”(developme-
ntal process)입니다. 생명이 있는 존재는 신비롭게도 성장합니다. 세상은 무질서의 정도, 즉 “엔트로피”(entropy)가 증가합니다. 그렇지만 생명은 이러한 자연법칙을 거슬러 자라는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를 드러냅니다.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에 의하여 부여된 생명이라면, 틀림없이 신앙의 성숙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단번에 완벽하여 지는 것이 아닙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의 구원을 이루라”(빌 2:12)는 말씀은 주님의 거룩함을 덧입으라는 명령입니다. 신앙을 일련의 발전과정으로 이해한다면, 이집트에서 출발하여 40년간을 경과하여 가나안 땅에 이룬 역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개인이나 집단이나 성숙이라는 필연적인 차원을 요청받고 있습니다.
“욥기”라는 쉽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욥을 비롯하여 4명의 욥의 친구들이 등장합니다. 신앙의 발전과정에서 본다면 이들은 날카롭게 세 부류로 갈라집니다. 엘리바스와 빌닷과 소발은 하나님에 의하여 책망을 받습니다. 그리고 욥의 기도와 용서를 통하여 회복됩니다. 그들은 “죄에 의한 고난”이라는 전제로 욥을 정죄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욥에게 위로는 커녕 욥을 괴롭게 하는 위로자입니다.
다른 세 친구 보다 낫지만 역시 욥의 경우에도 질책에서 아주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욥은 자신의 의로움을 강조하다 보니 하나님의 정의로우심을 의심합니다. 욥의 잘못을 신랄하게 나무라는 사람은 욥기에서 가장 수수께끼 같은 인물, 엘리후입니다. 엘리후는 가장 젊었지만 가장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그는 욥의 세 친구와 욥을 모두 질책합니다. 욥의 세 친구는 욥을 정죄하는 잘못을, 욥은 자신의 의로움을 주장하면서 절대 주권과 깊은 섭리의 지혜를 가지신 하나님의 정의를 의심하였다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욥이 “고난에 의하여 죄를 짓는다”고 말합니다.
엘리후는 욥기 32-37장에 이르는 장대한 논지를 격류처럼 토해냅니다. 엘리후의 깊은 논지는 점차 38-41장에 이르는 하나님의 논조와 유사해 집니다. 하나님은 엘리후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책망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엘리후의 욥을 향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욥을 향한 질문과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엘리후가 하나님을 대변한 하나님의 편에 서있는 지혜자라는 사실에 이르게 됩니다. 이제까지 세 친구를 향하여 격렬히 비판하던 욥은 젊은 지혜자 엘리후 앞에서 잠잠합니다.
다섯 명의 토론자들 속에서 우리는 자신에 얽매인 유아론(唯我論)적 신자인 욥의 세 친구, 욥과 같은 충실한 윤리적(倫理的) 차원의 신자, 그리고 엘리후와 같이 하나님의 논지와 다르지 않은 하나님 중심의 신비적(神秘的) 차원에 이른 지혜자를 나눌 수 있습니다. 나는 어디에 이르렀습니까? 하나님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을 통하여 성도들의 내면을 성숙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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