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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이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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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7/10/27(토)




   종교개혁의 전통은 전 유럽을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사활을 건 많은 종파간의 싸움이 일어났고, 교회는 정치와 연결되어 식을 줄 모르는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러면서 중세는 막을 내리고 근대사회가 열리게 되었습니다.“개인주의”와“이성”(reason)은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고, 사회는 하나님의 은혜나 왕의 권위가 아니라 개인의 계약에 의하여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인본주의가 퍼지게 되면서“하나님도 없고 주인도 없다”는 무신론에 기반을 둔 프랑스 대혁명(1789)이 일어났습니다. 이즈음 “악당을 타도하라”는 볼테르의 서슬 퍼런 외침은 바로 그리스도와 교회를 겨냥한 것이었습니다. 개신교로 전국가가 개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 사상이 점차 쇠약하여지던 19세기의 네덜란드에,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는 종교개혁의 불을 지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캘빈의 후예였습니다. 캘빈이 가졌던 하나님 주권사상(God's sovereignty)에 대한 깊은 열망을 가지고 그는 인본주의 사상에 팽배하고 공산주의의 물결에 의해 흔들리는 네덜란드를 영적으로 갱신하려는 높은 뜻을 가졌습니다. 그는 흐론 반 프린스터러의 기독교 정당을 이어 받아, 95퍼센트가 신자이면서도 신자로서의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하던 전 네덜란드를 향하여 교회적, 정치적 쇄신을 향한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 정당을 꾸준히 발전시켜 가면서, 교회개혁, 사회개혁, 정치개혁, 교육개혁의 슬로건을 가지고 그는 성도들이 나라를 영적으로 새롭게 할 것을 평생 설득하면서 실제로 개혁의 프로그램을 실천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목회자에서 국회의원으로, 정당 당수에서 나라의 수상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여 나아갈 때에, 그의 개인적인 자서전은 네덜란드의 역사가 되었고, 교회사가 되었고 정치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가르치는 사립학교를 국가로부터 인정받도록 하였으며, 캘빈주의 사상에 입각하여 자유대학을 창설하여 네덜란드의 최고대학이 되게 하였고, 공산주의자들의 공세를 효과적으로 차단할 뿐 아니라, 나아가 이 모든 운동이 삶의 각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왕권”(Christ's Kingship)을 드러내기 위한 작업이 되게 하였습니다.
  200권의 책을 저술하고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정치를 하는 그의 마음 중심에는 “왕을 위하여”(For the King)라는 그리스도를 향한 충성심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인간 삶의 전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왕권으로부터 제외된 영역은 전혀 없으며, 이 왕을 위한 삶은 모든 인간의 의무라고 그는 바르게 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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