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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로서의 제리 폴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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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07/5/25(금)

    
  지난 5월 15일에는 미국의 저명한 라디오, 텔레비전 설교가이며, 한때 강력한 정치운동단체 “도덕적 다수”(Moral Majority)의 창립자인 제리 폴웰(Jerry Falwell) 목사가 향년 73세로 타계하였읍니다. 침례교 목사인 폴웰 씨는 고향인 버지니아 린치버그에 리버티대학교를 설립했으며, 현재까지 총장으로 재직해 왔습니다.
  그는 아울러 50여 년 전 고향의 한 작은 교회를 맡아 사역한 이후 약 24,000명이 출석하는 미국 최대교회 중의 하나로 키워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영향력의 출발은 1979년에 “도덕적 다수”를 통하여 레이건 대통령을 공식지지한데 있었습니다. 이 단체는 1980년에 대통령 후보로 캘리포니아 주지사인 로널드 레이건을 후보로 내정하고, 8000만의 잠자는 기독교인을 깨워 신앙과 가족과 기독교적 가치를 제고하려는 운동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였습니다. 그 결과 수십만 명의 목사와 사제와 랍비에게 영향을 미쳤고, 수천만의 종교적 보수주의자를 동원할 수 있었으며, 레이건을 두 차례나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의 영향력은 기독교적 가치를 공공의 영역에 정치적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특징입니다. 레이건행정부도 보수적인 기독교인의 지지와 요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때 이후로 낙태에 대한 반대, 동성애에 대한 거부, 그리고 공산주의에 대한 강력한 대항으로 대표되는 보수적인 기독교인의 소리가 정치에 반영되는 결과를 낳았으며, 당시의 도덕적 다수의 주장과 공화당의 정강정책은 거의 차이가 없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정치의 영역을 불신자에게 내어주지 않고,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공공의 영역에서도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은 제리 목사님이 가진 카리스마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정치영역에 들어가서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에 섰으므로, 60년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주도하는 민권운동을 반대한 것이라든가, 성경이 가르치는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에 대한 관심을 덜 가진 것은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최근에 들어 공화당 대외정책의 실패로 그가 2004년 다시 시작한 “도덕적 다수 연합”(Moral Majority Coalition)은 거의 주목받지 못하였으며, 그의 죽음과 함께 그 단체의 정치적 영향력도 회복
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나간 한 세대 동안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교회와 학문의 영역 뿐 아니라 정치계에서도 제자의 삶을 살려고 애썼던 것을 잊을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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