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국가는 하나님의 선물 > 민목서신 | KCMUSA

선한 국가는 하나님의 선물 > 민목서신

본문 바로가기

민목서신

홈 > 목회 > 민목서신

선한 국가는 하나님의 선물

페이지 정보

본문

작성일: 2004/7/7(수)


선한 국가는 하나님의 선물

  2004년 5월 21일 서울 남부지법 이정열 판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하여 무죄라는 역사적 선고를 하였다. 분단과 대치의 상황에서 집총을 거부한 사람을 무죄라고 한 것은 파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이는 초대교회로부터 논의의 전통을 가진 문제이다. 백부장 고넬료가 복음을 받고 군대를 떠났다는 기록이나, 로마 시위대에서 바울의 전도를 받은 군인이 조기 제대를 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나 초대교회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무기를 드는 것은 용납하지 않으려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대표적인 병역복무 반대의 신학자 터툴리안은 복무거부로 죽는 것을 순교의 차원에서 이해하였다. 오리겐이나 락탄티우스도 이와 비슷한 입장을 가졌다.  
  이러한 입장으로부터 점차 군복무를 허용하는 변화는 기독교인들이 로마 주변부의 소수계(minority)에서 책임 있는 사회의 주체가 됨에 따라서 발생하였다. 어거스틴은 군복무에 대한 긍정적인 주장을 하였다. 그리스도인이 병사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였다. 그는 전쟁을 필요악으로 보면서도 전쟁이 동시에 죄의 결과이자 죄의 치유방식이라고 보았다.
  병역과 전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입장은 “국가를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는 국가관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 핍박의 시대에 국가는 황제의 숭배를 강요하고 교회를 핍박하는 요한계시록 13장이 말하는바 “짐승”(beast)이었다. 생사여탈권을 가진 가공할 권세인 국가는 인간성을 억압하고, 파괴하고, 무너뜨리고, 훼손하는 사단의 도구였다. 그러나 국가가 항상 묵시적인 문서에서 드러난 것처럼 짐승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둘째로 로마서 7장에서 사도 바울은 강력한 “칼의 권세”를 가진 “관원”으로 표현된 국가가 “하나님의 은총”의 일환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바울은 로마군단이라는 불요불굴의 무력을 가진 국가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선을 진작시키고 악을 징치하는 교회와의 동심원에서 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본 것이다. 비록 죄와 인간의 악이 정치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직접통치”를 파괴하였으나, 하나님은 국가에 의한 권위의 행사를 통하여 범죄하기 쉬운 인간에게 “기계적 치유책”으로 국가를 제공한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군사력이나 경찰력을 필요하지 않다고 보는 입장은 인간의 죄와 악의 문제를 나이브하게 생각한 오류이다. 평화는 “무장해제”에 의하여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전쟁억제력”에 의하여 지켜지는 것이 현실의 정치 현장이다. 외견상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계명과 일치하는 듯한 “집총거부”와 “복무거부”의 확대는 국가를 돌이킬 수 없는 무능력상태나 무정부상태로 떨어뜨리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정치사 속에서 무력을 관할할 수 없는 유약한 정부에 의하여 발생한 무정부상태는 독재보다 훨씬 더 그 결과가 잔인하였다.
  신학적인 차원에서 볼 때, 국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국가는 죄를 억제하는 강제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의 선”을 위하여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이다. 제도를 통한 하나님의 의도가 그러하듯이 국가도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기 위하여 우리에게 주셨다.  
  더구나 많은 나라를 세우시면서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공중정의”(public justice)를 확립하기 위하여 국가를 유지하신다. 그러므로 국가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는 인간의 “인간의 부패한 열망”(corrosive desire)을 억제하려는 “교정적 열망”(corrective desire)을 달성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국가를 존귀하게 생각하고 애국하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기독시민의 국가와 민족사랑은 다음과 같은 대안을 가질 수 있다.
  첫째, 독재나 국가숭배의 전체주의는 결코 국가를 향한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의 순교적 열정이 빛나는 때는 국가가 신비화되고 지도자가 하나님과 같이 우상화되는 시기이다. 북한과 같은 유사종교체제를 과감하게 하나님 아래로 상대화시키기 위하여 기독시민의 중보기도와 선교를 필요로 한다.  
  둘째로 국가의 생사여탈권으로 대표되는 힘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하여 있는 것이다. 힘은 그 자체로 죄가 아니다. 역사의 발전 과정에서 모든 문명과 인간의 성취는 힘의 결집 없이는 이루어진 경우는 없었다. 더욱이 국가를 통하여 얻어지는 합리성의 제고 및 평화유지나 문명보호능력은 하나님의 일반은총이다.
  셋째로 국가의 두 가지 필요조건은 힘과 법(might and right)이다. 정의를 확보하기 위한 힘과 정의를 분별하기 위한 법질서의 확보는 국민의 병역의무의 완수와 납세 및 정치참여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군복무는 국민의 의무이며 선이다.  
  넷째로 기독시민은 국가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기독시민의 비젼은 항상 자신이 선호하는 정파가 정권을 잡는 것 이상이 되어야 한다. 여리고를 정복하기 직전에 여호수아 장군이 만난 “여호와의 군대장관이라는 천사”는 가나안 사람의 편도 여호수아의 편도 아니었다. 그는 오직 여호와의 편에 선 대천사였다. 기독시민은 항상 세상국가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탁월함을 전하는 메신저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하여 죄가 속하여 지고 그리스도의 나라로 세상이 재편되기 전까지 국가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이 때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강제력은 계속하여 순화되어야 한다. 강한 국가는 무력에 의하여만 강하여 지는 것이 아니다. 총체적으로 강한 국가는 사회의 각 영역이 고르고 균형 있게 발전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교육, 기업, 예술, 교회, 과학기술 및 각 사회단체의 발전은 국가의 능력을 제고시키는 시민사회분야이다.
  나라가 나라를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여 일어나는 시대에 우리가 지키지 않는 나라를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 열방의 도움을 받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충만한 정신문명과 문화력으로 세계사에 재공헌 할 수 있게 되는 통일 민주국가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기독시민의 애국이 국가의 장래를 비추는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리라.

(이 글은 "교회와 신앙"이라는 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KCMUSA,680 Wilshire Pl. #419, Los Angeles,CA 90005
Tel. 213.365.9188 E-mail: kcmusa@kcmusa.org
Copyright ⓒ 2003-2020 KCMUSA.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