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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린이 신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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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CM뉴스| 작성일2021-04-29 | 조회조회수 : 1,44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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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건의 『어린이 신학』 (신앙과지성사, 2017)



2020년 대한민국을 경악케 했던 사건 중의 하나가 2020년 서울특별시 양천구에서 발생한 아동 학대 살인 사건, ‘정인이 사건’이다. 정인이 사건은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입양한 당시 8개월의 여자아이를 입양모 장하영과 입양부 안성은이 장기간 심하게 학대하여 16개월이 되었을 때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이다. 또한 설 연휴 직전인 2월 10일에는 경북 구미의 빌라에서 2살배기 여아가 숨진 채 발견됐다. 친모는 아이를 빌라에 남겨둔 채 이사를 가버려 결국 아이가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살인)로 구속됐다. 발견 당시 아이 사체의 부패가 상당히 진행돼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고 한다. 그보다 앞서 10살 조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이모 내외가 구속되는 사건도 있었다. 조카가 욕조에 빠졌다고 119에 신고한 이들은 실제로는 역할 분담까지 해가며 물고문 수준으로 조카를 학대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러한 아동 학대 사건은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니다. 1960년부터 대한민국의 아동 학대 사건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위사건 이외에도 2010년 이후의 아동 학대 사건만 살펴봐도 서울 광진구 구의동 어머니 살해 사건 (2011년), 울산 울주군 여아 학대 사망 사건 (2011년~ 2013년), 칠곡 계모 아동 학대 살인 사건 (2013년), 울산 입양아동 학대 사망 사건 (2014년), 인천 송도국제도시 어린이집 아동 폭행 사건 (2015년), 인천 학대 여아 탈출 사건 (2015년), 부천 초등학생 토막살인 사건 (2012년~ 2015년), 부천 여중생 백골 살인 사건 (2015년~ 2016년), 평택 아동 살해 암매장 사건 (2013년~ 2016년), 청주 아동학대 암매장 사건 (2011년~ 2016년), 고준희 양 살인 사건 (2017년) 등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다양해지고 그 수법도 악랄해져 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동 학대 사건은 단순히 어린이들을 범행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넘어서 사회 전체의 아동 인권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는 현상을 드러내고 있다는 데에 그 심각성이 더하다. 예를 들면 정인이 사건이 공중파 방송을 통해 보도돼 전국적인 공분을 불러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아동을 향한 학대와 범죄는 여전히 자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당황스럽기 이를 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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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신건 교수


더욱이 정인이 사건은 기독교인들에게는 더욱 당황스러운 사건이었다. 그들이 소위 독실한 기독교인들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순진무구하고 또한 방어 능력도 없는 어린아이들이 어른들에 의해 무참하게 학대받고 살해되는 상황에서 다시금 우리의 눈길을 끄는 책이 있다. 오래전(1997년)에 발간되었지만 최근(2017년) 신앙과 지성사(최병천 대표)가 증보판으로 다시 출판된 이신건 저 『어린이 신학』이다. 『어린이 신학』은 서울신학대학교 은퇴교수 이신건 교수가 1997년 처음으로 발간한 책이다. 이 교수는 10년 가까이 해직교수로서 살아가는 기간에 이 책을 저술한다. 이신건 교수를 만났다. 어린이주일을 앞두고 한국교회에 어린이 신학이 조금 더 회자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그의 삶과 어린이 신학에 대해서 듣고 싶었다. 2021년 4월 22일 오후 신촌에 있는 출판사 신앙과 지성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 교수님의 삶의 여정을 소개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러한 삶의 여정을 몇 마디 말로 표현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신건: 나는 삼대를 이어 예수님을 믿어온 그리스도인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활동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으며, 예수님을 인생의 모범과 구주로 믿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일반대학의 입시를 준비하는 중에 가까운 여자 친구가 돌연히 죽은 사건에 충격을 받고, 죽음과 인생의 의미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끝에 서울신학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책읽기를 무척 좋아했던 나는 신학 책도 즐겨 읽었고, 이런 과정에서 신학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날로 더 커져서 계속 신학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신학대학, 연세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 튀빙엔 대학에서 몰트만의 지도 아래 ‘칼 바르트의 교회론의 발전과 형태’라는 제목을 박사논문을 썼습니다. 귀국 후에 모교에서 조직신학을 가르쳤고, 지금까지 많은 책을 쓰고 번역했습니다. 2018년에 은퇴한 후에 ‘성결신학연구소’와 ‘생명신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유투브 ‘이신건TV’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약하고 무능한 하나님과 신학적 대안!


▲ 교수님, 약함과 무능 속에서 자신의 전능을 나타내시는 (어린이) 하나님을 오늘의 사람들이 믿을 수 있을까요?


이신건: 오랫동안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의 투사의 대상으로서 하나님을 무한히 전능한 존재로 만들고 신앙해 왔습니다. 가부장적, 제국주의적인 문명 속에 형성된 구약성서에도 이런 하나님의 모습이 적잖게 투영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은 자신을 철저히 비우고 낮추신 하나님이요, 스스로 높아지려는 권세가들과 지배자들을 철저히 전복하시는 혁명의 하나님입니다.


무엇보다 “오직 어린이 같은 자라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사회에서 무시와 학대를 받아온 가장 연약한 인간인 어린이를 어른의 중심에 세우시고 어른보다 더 높이신 예수님의 행동, 그리고 스스로 어린이처럼 무력하고 무능하게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은 바로 어린이와 같은 하나님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 어린이 신학(어린이 하나님의 형상)이 어린이 학대에서 보이는 이중적인 폭력구조(힘센 자와 남성의 폭력)의 극복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떤 신학적 전제가 가능할까요?


이신건: 세상 사람들도 이제는 지배와 착취, 차별과 학대를 점점 더 미워하며, 더욱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을 꿈꾸고 실현해 나가고 있습니다. 하물며 연약하고 온유한 모습을 통해 폭력적이고 지배적인 세상을 전복한 예수님, 약자를 끌어안고 그들의 편을 든 예수님을 믿는 교회는 얼마나 더욱 그리해야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과거에 폭력적인 남성과 어른, 지배적인 권력자가 신봉한 폭력과 지배의 하나님을 과감히 버리고, 이제는 섬김과 사귐의 하나님을 선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어린이 하나님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가장 적합하고 절실한 하나님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코로나 국면 이후 더욱 가속화된 한국교회의 신뢰하락 상황에서 어린이 신학을 통한 조언을 해 주신다면 어떤 것들이 있겠습니까?


이신건: 예수님처럼 교회는 세상, 특히 세상에서 가장 멸시와 학대, 고통을 받는 자들의 편에 다가가서 그들을 섬기는 온유한 교회, 어린이와 같은 교회로 거듭나야 합니다. 아직도 교회의 이익과 낡은 전통을 고수하기 위해서만 전전긍긍하는 교회, 세상을 섬기기보다는 스스로 세상보다 더 높아지려는 교만한 교회는 세상의 소망과 빛이 될 수 없으며, 변화의 누룩이 되기는커녕 도리어 부패의 세균이 될 것입니다.


코로나19가 자연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오만한 인간에 대한 일종의 채찍이라면, 동시에 교회를 내리치는 경종과 회개의 채찍이기도 합니다. 건물 숭배, 인물 숭배,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예배, 실천과 따름과 나눔이 없는 교회로 하여금 묶은 관행을 끊어내고 완전히 새롭게 탈출(출발)하라는 하나님의 새로운 부르심입니다. 어린이와 같은 하나님을 재발견할 때, 비로소 새로운 깨달음과 실천도 가능해질 것이라고 저는 굳게 확신합니다.


놀이하는 예수


▲ 어린이 예수에서 놀이하는 삶을 그 특징 중의 하나로 제안하고 계십니다. 한국교회는 지나치게 엄숙한 신앙을 강조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은 재미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굳어지게 만들었습니다. 요즘과 같이 교회 안에서 젊은이들이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놀이하는 어린이 예수’에 대한 소개는 매우 획기적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국교회 안에서 놀이하는 어린이 예수가 가능할까요?


이신건: 내가 어릴 적에 다니던 교회는 그야말로 찬양과 놀이, 사귐과 새로움이 가득한 공간이었습니다. 내가 교회에 이끌리게 된 것은 단지 복음 때문만이 아니라, 엄숙하고 고루하고 굳은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아니 세상을 새롭게 혁신하는 자유롭고 열린 교회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급속히 성장하고 건물도 점점 더 웅장해지면서 어느새 엄숙주의와 권위주의가 똬리를 틀기 시작했고, 유교적 정숙주의에 의해 크게 지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가까움과 현존을 증언하고 실천한 예수님은 엄숙한 동물 제사와 거래로 얼룩진 타락한 성전 예배 대신에 일상 속에서 맛볼 수 있는 즐거운 잔치와 열린 사귐, 즐거운 놀이를 강조했습니다. BTS의 역동적인 모습, 흥겨운 트로트의 부흥 등은 한국인이 정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정서도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 보여주었습니다.


오직 어린이와 같은 존재가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아무런 숨김과 위선도 없이 하나님의 나라의 기쁨을 춤과 노래, 노래로 맛보고 즐길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떠나는 젊은이를 위해서도 놀이의 신학은 시급히 재발견되고 실천되어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예전에 찾아 볼 수 없었던 흥미로운 교회 이름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춤추는 교회’, ‘놀이하는 교회’, ‘즐거운 교회’ 등과 같은 교회 이름이 없는 것은 참으로 유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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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다운 성령 경험


▲ 교수님의 어린인 신학 책에서 성령론도 다루고 있는데 어린이다운 성령 체험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조금은 낯선 개념이기도 합니다만...


이신건: 한국교회가 성령을 주로 현실 도피적, 신비주적으로 경험해 왔다면, 라틴 아메리카는 성령을 매우 현실주의적으로 경험해 왔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편견이었습니까? 어디서든 성령은 두 가지 형태로 경험되어 왔습니다. 초자연적이고 신비적인 성령 경험이 있다면, 현실적이고 경험적인 성령 경험도 있습니다. 불과 같고 바람과 같은 성령 경험, 탈혼적, 엑스타시스적 성령 경험도 있지만, 세상을 전복하는 성령 경험도 분명히 있습니다.


어린이다운 성령 경험은 마치 온유한 비둘기처럼 우리에게 조용하게, 온유하게 강림하는 성령 경험을 강조합니다. 성령을 통해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는 폭력적인 현실의 전복을 힘차게 노래했으며, 성전에 들어간 예수님은 성령 강림을 통한 현실의 변혁을 강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린 아기를 계속 탄생시키시는 주된 이유는 어른이 만든 부패하고 굳은 세상을 다시 갈아엎기 위해서라고 저는 믿습니다.


▲ 교수님, 저는 어린이 신학을 읽으면서 굉장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의 과문한 탓이기는 하지만 어린이 신학이라는 개념과 또 이에 대한 전체적인 신학적 전개는 교수님의 책을 통하여 처음으로 접했습니다. 어린이 신학이 부각되지 못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신건: 한국교회가 아직도 전통적인 가부장적, 전능한 하나님 이미지를 전혀 벗어나지 못한 이유도 있겠지만, 어린이 신학이 어린이에게는 이해될 수 없고, 더욱이 어린이에 의해 확산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민중신학은 민중이, 여성신학은 여성이 환영하고 확산할 수 있지만, 어린이신학은 어린이가 환영할 수도 없으며, 더욱이 확산할 수도 없습니다.


어린이신학도 어린이처럼 여전히 무시와 푸대접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어린이를 통해, 그리고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을 통해 조용히, 그리고 저의 초라한 책을 통해서도 세상을 지속적으로 변혁하고 계신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 교수님은 은퇴하셨습니다. 앞서 사신 분으로서 오늘의 한국교회와 신학생을 위하여 한마디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신건: 끊임없이 책을 읽고, 쉼 없이 반성하며, 늘 새롭게 출발하십시오. 만약 ‘어린이신학’을 깊이 읽고 곰곰이 반추해 본다면, 여러분의 생각과 인격, 신앙과 실천은 혁명적인 변화를 경험할 것이라고 자부합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완전히 새로운 신학과 교회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묵은 생각을 뒤엎고 묶인 사슬을 깨뜨리는 새로운 독서를 강력히 권장합니다. 예수님처럼, 어린이처럼, 나의 어린이신학처럼 낮은 곳으로부터, 아래로부터 하나님과 세상을 다시 보고, 다시 출발해 보기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신건 교수와의 대담은 시종일관 열정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교수 자체가 매우 열정적인 분으로서 시종일관 얼굴에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 대화를 이끌어 갔다. 은퇴 한 이후에도 유투브를 통하여 활발한 신학 담론을 이어나가는 모습은 나이를 잊게 하는 모습이었다. 당당하게 늙어가는(?) 이신건 교수는 최근 모 교단 소속 신학교수 한분이 바르트 신학을 비판하자 유투브를 통하여 이에 대한 반론을 열심히 펼치는 매우 생동감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신건 교수의 은퇴 후의 활동을 응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솟구쳐 나오는 것을 억제할 수 없었다. 뒷모습이 당당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힘차게 하고 있는 이신건 교수와 대담을 하면서 문득 서유석의 노래(너는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가 떠올랐다.


“삼십년을 일하다가 직장에서 튕겨 나와 길거리로 내몰렸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백수라 부르지 월요일엔 등산 가고 화요일에 기원 가고 수요일엔 당구장에서 주말엔 결혼식장 밤에는 초상집/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중략) 인생이 끝나는 것은 포기할 때 끝장이다.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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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오른쪽의 유르겐 몰트만 밑에서 칼 바르트의 교회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신건 교수


이신건 교수

서울신학대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독일 튀빙엔대학교 신학박사.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성결신학 연구소 소장. 저서로는 ‘칼 바르트의 교회론’, ‘하나님의 나라와 이데올로기’, ‘하나님의 나라의 윤리’, ‘창 밖에 앉아 있는 청년’, ‘조직신학입문’, ‘평신도 눈높이 신학’, ‘하나님 나라의 지평 위에 있는 신학과 교회’, ‘어린이 신학’, ‘온전한 영성’, ‘공의를 위해 다시 오시리라’가 있고 옮긴 책으로는 ‘교의학’, ‘교회’, ‘칼 발트의 정치신학’, ‘고대교회와 동방교회’, ‘오늘 우리에게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나는 어떻게 변하였는가’,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역사’, ‘생명의샘-성령과 생명신학’, ‘희망의 신학’, ‘칼 바르트의 신학묵상’, ‘나는 영생을 믿는다’(신앙과지성사 )등이 있다. 최근에는 신앙과 지성사에서 이신건 조직신학 전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또한 이신건 교수는 자신의 이름을 딴 이신건TV 유투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홍인식 대표(에큐메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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