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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진 교수의 영혼의 밤] 영혼의 밤과 믿음의 일곱 단계(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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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일곱 단계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처음 네 번째 단계까지는 순서가 중요하다. 그 다음 단계인 생명부터는 디퍼 워크 단계로 칭할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믿음의 세계에서는 현재 믿음으로는 한 단계 높은 믿음의 세계를 절대로 알거나 이해하거나 경험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천국에서는 불만이나 시기 질투가 있을 수 없다. 쉬운 예로 십자가의 도가 불신자들에게 어리석게 보이는 이유도 마찬 가지다. 불신자들과는 절대로 공유될 수 없는 믿음의 세계이기에 불신자들은 부러워하거나 탐을 낼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낮은 단계의 믿음을 가진 이는 더 높은 믿음을 부여받지 않고는 결코 더 높은 믿음의 세계를 상상할 수 없다. 다음 제시한 믿음의 단계를 살펴보자.


구세주 

구세주/주님 

주님/구세주 

주님/구세주/생명 

생명 

친구 

부활


위의 각 단계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 주어지는 자유함과 풍성함에 차이가 있다고 본다.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불신을 면하면 그때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감히 상상하지도 못한 ‘작은 자유’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다. 그 작은 자유를 어느 날 주님께 반납하려는 결심을 하게 되면 예수님은 나를 붙드신다. 이제는 자유가 아니고 ‘주님’의 완벽한 종으로 자부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자부심이 어느 날부터 ‘완벽한 자유’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주님은 나에게 ‘생명’으로 다가오신다. 이 무한한 자유를 육신의 기회로 넘기지만 아니하면(갈 5:13) 생수가 쉼 없이 흐르는 완벽한 자유를 경험하는 영의 세계가 현실에서 경험된다. 그리고 이 완벽한 자유를 마침내 주님께 돌려 드리면 주님은 나를 ‘친구’라고 부르신다. 왜냐하면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이기(요 15:13) 때문이다. 생명과 친구의 관계를 유지할 즈음에 주님의 말씀이신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요17:16)와 같이 비록 이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에 살지 않는 유일한 특권을 누린다. 


믿음의 상태 변이


나의 결점, 부러움, 경쟁, 야망 그리고 경제에 대한 성경적 이해가 이루어지면 나의 삶에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를 원하게 된다.


언젠가 이런 얘기를 들었다. 애벌레 한 마리가 한 무리의 다른 애벌레들과 기어가고 있었다. 그 애벌레는 다른 무수한 애벌레들이 자 기와 같은 방향으로 길을 가고 있음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주위 애벌레에게 어디로 가는지를 물었으나 누구하나 시원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한참을 기어가던 애벌레는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언덕을 기어오른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그 앞에 놓여 있는 언덕이 어떤 곳인 지, 자신들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열심히 기어오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애벌레는 한 발이라도 쉬면 밟혀 죽을 것 같은 ‘스템피드’(stampede) 상태에 빠지지 않으려고 기고 또 기었다. 모두가 그렇게 열심히 서로를 밟고 뛰어넘으며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이때 한 무리의 애벌레들이 목표점을 찍고 다시 내려오는 게 보였다. 그들에게 무엇이 있는지를 이 애벌레가 물어보았으나 그들은 아무 대답이 없이 열심히 앞만 보며 기어 내려갔다. 마침내 이 애벌레 역시 대망의 목표 점을 찍었다. 엄청난 감격 속에 정상 위의 무엇을 기대하며 정점을 찍는 순간 애벌레가 깨달은 것은 자신이 우뚝 선 곳 밑부분이 쉬지 않고 움직인다는 사실이었다. 


자세히 보니 자신이 기어오른 그 민둥산 전체가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닌가? 사실 그 민둥산은 기고 있는 수많은 애 벌레들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는 꿈꾸어 왔던 목표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망연자실한다. 결국 애벌레는 허전함과 절망감에 뼛속 깊이 박탈감을 느끼며 왔던 길로 다시 기어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이 때 갑자기 눈앞에 나비가 날아가면서 애벌레를 향해 윙크를 한다. 가만히 보니 아까 먼저 기어내려 가던 무리 중 한 녀석이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애벌레가 아니었다. 애벌레였던 나비는 끝없이 비상했다. 그가 날아간 뒤에는 생전 처음 보는 맑고 높고 푸른 하늘이 있었고, 그의 비상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의 얼굴은 바로 그 애벌레가 항상 기리던 얼굴이었다. 나비는 이미 시계(視界)에서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렇다. 질투와 야망과 경쟁의 질곡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애벌레가 아니라 나비가 되면 된다. 나비에게는 더 이상 경쟁을 해야 할 한정된 밥그릇이 존재하지 않는다. 경쟁은 애벌레에게 국한된다. 기는 자와 나는 자는 경쟁 관계가 아니다. 나비는 삼차원의 공간과 시간을 종횡무진하며 지칠 필요가 없다. 자원이 고갈되지 않는 세계에 있기에 경쟁에 목맬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소위 요즘 말하는 ‘블루오션’이 바로 나비의 삶이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니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이다. 나비가 염려하는 것은 날개를 흔들 때 혹 중력이 미치지 못 해 더 이상 날지 못하는 것뿐이다. 


목회를 10여 년 해온 목사는 더 이상 교회가 부흥하지 않아 답답하고, 회사원은 진급하지 못해 답답하고, 자영업자는 매출이 시원치 않아 답답하고, 연구원은 수행 과제에 예상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아 답답하다. 데이터 조작이나 비정상적인 거래나 비난받는 목회도 이런 답답함에 연유한다. 근본 이유는 날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비는 더 이상 애벌레의 삶을 살지 않는다. 수많은 애벌레가 한 방향으로 기어 나가고 있어도 나비는 당당하게 하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날아가면 그만이다. 경쟁이나 야망이나 부러움이라는 단어는 이 나비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계속>


성경적 상담 세미나 문의: isaya5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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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진 교수 


약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이민 

1981년 오하이오주립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2011년 정년 후 해외 직장생활을 접고 36년 만에 한국으로 귀국.

삼성물산 고문을 지냈으며,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산학협력교수,

현재는 한동대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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