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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진 교수의 영혼의 밤] 제2부 제2장 선택과 반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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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CM뉴스| 작성일2021-11-22 | 조회조회수 : 2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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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마지막 종착점인 로마로 향하기 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장면에서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신을 말한다.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행 21:13). 


실제로 주위에서 만류했던 대로 그는 잡혔고 그는 하나님의 시간에 죽어 갔다. 이것이 바로 주님과의 눈맞춤이다. 육신이 살아남기 위하여 스스로 불을 지피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눈맞춤이며, 죽음이 올지라도 그것이 주님의 인도라면 기꺼이 수용하는 모습이다. 


삶의 목적(目的)과 목표(目標)를 분명히 함 

충성된 이들에게서 쉽게 발견되는 결함 중에 한 가지가 삶의 목적과 목표가 뒤바뀐 모습이다. 목적(purpose)은 왜 사는지에 대한 존재의 이유고, 목표(goals)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목적은 단수이고 목표는 복수다. 목표는 항상 목적에 부합되게, 즉 목적이 이끄는 대로 설정을 해야 한다. 목표는 존재의 이유가 아니고 목적에 부합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과도한 부하(負荷)가 걸리고 영혼의 밤이 온다.


복음주의자인 우리가 사는 목적이 전도나 선교나 봉사면 심각한 문제다. 이것들은 삶의 목표 중 한 가지일 뿐이지 존재 이유가 아니다. 우리의 존재 이유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가지기 위함이다. 인생이 자식을 가지는 이유와 흡사하다. 생각해 보라! 우리가 자 식을 가지는 이유는 자식을 통해서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누가복음 10장에 등장하는 마르다 이야기다. 그녀는 여러 가지 일로 분주하고 걱정이 많다. 반면에 마리아는 한 가지만 전념한다. 마르다 목표는 목적지향적이 아니어서 섬김 중심의 종교생활에 분주하여 소진증세를 보인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여기며 자신의 존재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한 가지 일에 집중했다. 


자신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하나님만 의지함 

성경적 상담은 과거의 상처가 현실을 주장하기 때문에 과거의 사실도 다루지만 현실 문제도 아울러 다루어야 한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삶의 소유권을 분명히 하면 현재진행형의 갈등이나 혼돈이 더 이상 극대화되지 않는다.


신앙생활의 단계를 간략히 설명하자면, 먼저 주님에 관한 말씀을 듣고(롬 10:17), 은혜를 깨닫고(골 1:6), 헌신(롬 12:1)하는 것이다. 회개와 용서, 그리고 자신의 소유권을 주님께 드려 자신의 자원(육신)으로 살아가지 않겠다고 포기하는 단계가 ‘헌신’이다. 이제까지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서 믿었고 자신의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필요로 했지만, 지금부터는 자신의 소유권을 포기하는 과정이다. 


이 때 선한 일도 포기해야 한다고 권하면 대부분 당황한다. 부부 갈등 때문에 상담 요청을 한 경우에는 어떻게 해서든 배우자를 본인의 바람대로 바꾸어 보려고 하나님을 이용한다. 이 시도를 하나님 앞에 포기해야 되는 지점이 믿음의 변곡점이다. 반드시 이것만은 내 스스로가 조종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을 던지는 것이 헌신이다. 주님께 던지면(벧전 5:7) 다 가질 것이고, 움켜쥐려고 하면 가진 것까지도 다 빼앗기는 것(마 13:12)이 신위적인 믿음의 세계다. 


로마서 12장 1-3절의 ‘드린다’는 단어를 이미 바쳐진 자신을 발견한다는 현재완료형으로 이해하면 유익하다. 아직도 바쳐지지 않은 부분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이 기도이고, 자신의 믿음의 분량을 아는 것이 말씀 묵상이고 영적인 예배고 찬송이다. 자신의 믿음의 분량을 지나치면 영적 소진과 영혼의 밤을 겪을 수 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바른 이해   

성경적 상담이 다른 상담과 비교되는 점은 하나님의 성품을 소개한다는 점이다. 영혼의 밤에 갇힌 신자들은 어쩔 수 없이 하나님에 대한 실망감에 당황한다. 그때까지 알고 있었던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큰 혼란을 겪는다. 결과적으로 평소에 가지고 있었던 하나님관이 표면으로 드러나는 셈이다. 영혼의 밤의 귀한 사역 중 한 가지는 비뚤어진 하나님관을 바꾸는 것이다. 


아버지가 아이의 행동보다 더 높은 기대치를 요구하게 되면 아이는 하나님을 요구만 하시는 분으로 인식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하나님은 요구하시는 분이라 생각하기에 그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하게 되고 그 결과 하나님과 멀어진다. 가정의 존재 목적은 자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며 모든 필요를 채워 주는 것인데, 특히 아이의 감정적 필요까지도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아이는 자라서 하나님과의 감정적인 친밀함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는 기형적 관계로 발전한다. 부모가 너무 바쁘면 아이들에게 관심을 쏟기 어렵다. 이런 아이들은 커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질 때 항상 하나님을 먼 존재로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폭력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하나님을 폭군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걸핏하면 약속을 어기는 아버지에게서 자라난 아이는 하나님을 신실한 분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조실부모를 하거나 아버지가 아이들을 잘 돌보지 않고 늘 바쁘면 아이들은 하나님도 자신을 버려두는 분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일상생활만을 영위함   

밤은 점점 더 깊어지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지만 자신의 마음은 환한 대낮보다 더 밝고 분주하다. ‘무엇이든 해야 하는데’ 하는 긴박감만 들고 혼란이 깊어지니 잠을 이룰 수 없다. 마음의 계획은 용솟음치고 다시 한 번 무언가 시도하면 될 것도 같고 육신이 움직이는 대로 하고 싶다. 캄캄한 밤을 훤히 비추고 싶은 것이다. 다른 이들의 성공이 눈앞에 보여 자신이 점점 작아져만 가는 것 같아 과감히 무엇인가 저지르고 싶어진다. 


영혼의 밤이 오면 열심 있는 신자들 특히 복음주의자들이 크게 당황하는 점은 이전에 사용하던 ‘하나님의 일’이라는 단어를 전도나 선행에만 국한시켜 온 자신에 대한 혼돈이다. 그들에게는 전도라는 명제가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영혼의 밤이 오면 더욱 전도에 매달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을 하지만 사실은 전인격적이고 전방위적인 하나님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모든 활동 규모를 축소해서 재점검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계속>


성경적 상담 세미나 문의: isaya5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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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진 교수 


약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이민 

1981년 오하이오주립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2011년 정년 후 해외 직장생활을 접고 36년 만에 한국으로 귀국.

삼성물산 고문을 지냈으며,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산학협력교수,

현재는 한동대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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