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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호진 교수의 영혼의 밤] 제2부 제1장 십자가의 비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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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분노와 그에 따른 폭력만이 문제의 전부가 아니었다. 초등학생인 그녀는 엄마를 보호해 주어야 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었다. 그녀는 방문 앞에 앉아서 두려움을 억누르고 위험한 시간을 감지해서 경찰에게 도움을 청하는 타이밍을 헤아려야 했다. 적절한 시간에 그녀가 개입하지 않으면 엄마로부터 아버지에게서 오는 것보다 더 큰 화를 감당해야 했다. 엄마 또한 아버지 못지않은 분노를 연약한 딸에게 쏟아붓곤 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혼동은 부친에게 머리채를 잡혀 질질 끌려가서 폭행을 당할 때에도 왜 당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것이었다. 이제 성인이 된 그녀였지만 어린 시절 두려움에 떨던 그녀의 고통은 부친으로 받은 폭행의 트라우마를 그대로 안고 있었다. 그 고통은 성장 후 결혼생활에 갈등이 있을 때마다 남편에게 투사되어 나타나 마치 아버지가 폭력과 폭언을 하는 듯 두려움의 대상으로 비쳐졌기에 그녀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지나치게 자기방어를 하여 매우 공격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이미 눈물이 얼룩지고 있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부모님의 기대에 부합한 삶을 살고자 했기에 성인—어린아이로 힘겨운 삶을 살았던 것이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지 만 상담이 끝날 즈음 굳어 있었던 어깨의 긴장이 풀리며 남편을 향했던 분노는 부친에 대해 억눌려 있었던 분노였음을 깨닫고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늘 두려움의 존재였던 부모님께 솔직한 대화로 자신의 필요와 권리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한 인격체로 서서 당당하게 자유로운 삶을 시작했다. 한이 풀어진 사람들은 설명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심을 피부로 느낀다.


    억울하면 억울하고 애통하면 애통한 대로 애통하자. 

    결과가 아무리 비참하게 전개되어 가는 느낌이 와도 있는 그대로 주님과 함께 울자. 시간을 가지고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정당화나 합리화를 하지 않고 주님 안에서 기다려 보자.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있는 그대로 주님께 토하자. 내 감정의 모든 느낌을 주님께 던져 보자. 비록 환경은 전혀 변하지 않을지라도 주님과 함께 있어 보자. 그 통증을 주님 앞에서 쏟아 보자. 


    왜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덮거나 느끼지 않거나 숨기거나 아닌 척하려고 하는가? 있는 그대로 수치심을 느끼고, 있는 그대로 울고, 있는 그대로 가장 안전한 이에게 토하면 한으로 남지 않는다. 그런 감정의 모음이 시편이다. 시편의 절반 정도(약 73편)는 다윗의 감정 토로다. 시편이 성경의 정중앙에 자리 잡고 있는 이유가 바로 우리의 감정을 소화하기 위함이라고 믿는다. 그러면 비록 환경은 조금도 변함이 없더라도 감정이 흘러가는 것을 반드시 경험하게 된다.


    연명형 사고 

    어떻게 하든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충동을 조장해서 나의 육신이 십자가상에서 죽지 못하게 하고 신위적인 믿음의 세계를 경험하지 못하게 한다. 이들은 안정권에 들어가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아 그것을 위해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지난 30여 년간의 상담 사역에서 경험한 바로는 가장 벅찬 상대가 바로 연명형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연명형 사고를 하는 이에게는 어떠한 고상한 필요도 중요하지 않고 오로지 연명하는 것만이 전부이다. 통증이 컸기에 통증을 회피하는 것을 삶의 근본으로 자리 잡은 상태다. 연명형에게는 살아남는 것이 전부이고 살아남고 난 후의 삶에 대해서는 전혀 대비책이 없다. 대동아전쟁과 한국 전쟁을 겪은 세대는 대체로 연명 이상은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 이미 전쟁이 끝이 났는데도 불구하고 평생을 마치 전쟁 치르듯 연명에만 급급해하며 늙어 간다는 점이다.


    EBS 방송에서 보도된 심리테스트다. 한국 대학생과 미국 대학생 두 집단의 사고 체계를 비교한 실험이다. 문제를 주고 풀게 한 후에 거짓말로 틀렸다고 했더니 한국 학생들은 그때부터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왜 틀렸는가에 흥미를 내기 시작한 반면에 미국 학생들은 거짓으로 계속 틀렸다고 하자, 더 이상 문제 풀이에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한국 대학생은 스스로 해법을 찾기보다는 외부적인 평가가 동기부여가 되고 어떻게든지 남의 기준에 맞추는 것을 중요시한다. 상대의 거부의 눈초리에서 온 통증에 자신을 넘기고 상대의 판단에 자신을 맡긴다. 전형적인 연명자의 종속의존적 육신의 형태다. 그래서 일단 안정권에 들어가면 일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2008년 이후 정년 보장을 받은 서울대 교수들의 논문 실적이 정년 보장 4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뿐아니라 주요 국립대 교수 전체의 논문 실적도 정년 보장 후 4년 만에 평균 30퍼센트 가량 떨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외국 유명 대학들의 경우 정년을 보장받아 안정적 연구기반과 대학원생 연구인력 등이 확보되면 더 많은 연구 성과를 낸다(조선일보 2013년 11월 14일 기사 참조).


    상대적 판단 

    상대적 판단 또한 십자가상의 죽음을 거부한다. 광야의 유대인들과 같이 나만 빼고 모두가 다 파산했으니 자신의 통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자각하지 못한다. 실제로 집단적인 트라우마와 개인적인 트라우마의 결과가 다른 것은 사실이다. 주위의 모두가 다 가난하다거나 동일하게 전쟁을 겪으면 상대적인 빈곤은 덜 느낀다. 


    홀로 그리고 다 함께라는 양면이 겹쳐 일어나야 생명력을 유지하는 곳이 교회 공동체다. 정상적으로 돌아가면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곳이지만 동시에 상대적인 흐름으로 가면 낭패다. 유기적으로 굴러가지 않는 공동체는 서서히 영적 빈곤으로 죽어감을 감지하지 못한다. 


    통증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다 아파하면 왠지 괜찮을 것 같고 혼자만 아프면 큰일 날 것 같다. 서양의 개인주의도 문제지만 동양적인 집단주의도 심각한 문제다. 두 집단 모두 상대적인 판단이 침입하게 되면 그 집단의 영적인 질은 심각하게 떨어진다. 상대적인 판단 또한 종속의존 육신의 일종이다. 


    정리하면, 신위적인 믿음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될 때가 (체념이 아니라) 절망 한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때다. 자신의 필요로 영원을 대면했을 때 느끼는 자신의 한계와 참담함에서 믿음이 시작된다. 유한한 존재로 알고 수긍했던 인생이 어느 날 영원이라는 단어를 실감하며 영원한 시간 속에 자신은 의미가 없고 철저히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 인생으로는 불가능한 믿음의 세계를 동경함과 동시에 자신 속에 선한 것이 없음을 목격함으로써 절망하게 된다. 그 절망의 끝에 기다리시는 영원의 주체이신 예수님과 눈맞춤을 하면 자신의 육신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 상에서 죽었음을 경험한다. <계속>


    성경적 상담 세미나 문의: isaya5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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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호진 교수 


    약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이민 

    1981년 오하이오주립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2011년 정년 후 해외 직장생활을 접고 36년 만에 한국으로 귀국.

    삼성물산 고문을 지냈으며,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산학협력교수,

    현재는 한동대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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