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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호진 교수의 영혼의 밤] 3장 육신의 문제와 통증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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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안에서 부단히 활동 중인 육신의 종류는 다양하다. 종속의존, 감정적 근친상간, 성과주의, 영적 폭행, 공황장애, 패시비티(passivity, 영적 소극성), 종교 중독 등은 불행히도 대부분 한국인의 삶을 전방위로 움직이는 근간이다. 작금에 화두가 되는 갑을관계인 ‘수동-공격형’(passive-aggressive)도 종속의존 육신의 일종이다. 특히 지난 40년간 근대화의 부산물인 경제성장의 중심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이 육신들 은 한국을 움직이는 골격인 지연・학연・혈연과 엉켜서 배금주의를 유발하며 천민자본주의를 형성했다. 경쟁과 비교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슬픈 동력이다. 청춘 남녀의 연애와 결혼에 있어 집이 강남이냐 강북이냐에 따라 그들의 앞날이 결정된다고 하니 참으로 육신의 영향이 대세다. 개인의 삶은 물론 국가의 질적 수준도 모두 육신의 무력화와 밀접하다.


    종속의존 육신(Co-dependency)   종속의존적(co-dependent)이라는 말은 독립적-협력관계(inter-dependent)라는 말과 구분된다. 이는 살아가기 위해 누군가 또는 무언가를 의지해야 생존한다는 뜻이다. 불신의 전형적 형태다. 내가 타인의 삶에 개입하거나 타인이 나의 삶에 개입하는 것을 허락하는 건강치 못한 삶이다. 하나님께서 계셔야 할 자리에 사람, 일, 술, 종교, 도박, 성, 관계, 음식, 완벽주의, 돌봄, 인터넷, SNS 등을 대치해서 그것에 의존하며 사는 것이 종속의존이다. 종속의존 육신은 스스로의 존재감보다는 타인과의 관계에 자신의 삶을 맡기거나 조종한다.


    성경에서 발견되는 종속의존성을 살펴보자. 하나님을 의존하면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자유로우며 종속의존성을 보이지 않는다. 성경 전편에는 종속의존성을 보여주는 사례가 넘쳐 난다. 그 시작은 아담이다. 하나님과 분리되자마자 생긴 육신의 한 현상이 종속의존성이다. 벗었어도 부끄러워하지 않던(창 2:25) 아담이 죄를 범한 후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2)라고 말하는 대목은 심각한 종속의존성을 보여준다. 


    주님은 첫 공중 설교에서 종속의존성을 경계하신다. 외식하는 행동을 금하시며, 남을 도울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권하셨고, 금식할 때 외인에게 보이지 않게 은밀히 하라 하셨으며,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고 하셨고,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 하시며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등의 가르침을 주셨다. 


    사울은 공중 앞에서 왕으로 선택을 받자 짐 보따리 뒤로 숨는다 (삼상 10:22). 사울의 낮은 자존감은 현실을 감당하지 못하고 타인의 평가를 염려하는 전형적인 종속의존성이다. 


    하나님의 법궤가 돌아오는 것에 기뻐하며 하의가 벗어진 줄도 모르고 춤을 춘 다윗은 종속의존적인 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남편 다윗을 멸시한 사울의 딸 미갈(삼하 6:20)은 사람을 의식하는 아비 사울의 종속 의존성(삼상 15:24)을 대물림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주님으로부터 세 번이나 거듭된 질문을 받은 후, 비참하지만 찬란한 자신의 죽음에 대해 예언을 듣는다. 이에 베드로는 마음속의 앙금이 가라앉기도 전에 옆에 있는 요한은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에 대해 묻는다(요 21:21). 한 인생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러한 상대적인 질문이 나왔다는 사실은 베드로 또한 종속의존 육신을 가지 고 있다는 방증이다. 


    아침에 온 이나 저녁 늦게 온 이에게 동일한 임금을 주는 사업주에게 불만을 표하는 일꾼도 종속의존성의 표본이다(마 20:12). 바울도 분명히 말한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갈 6:4-5) 내 짐을 감당한 후에 이웃의 짐에 대해서 협력하란다. 이것이 천국 백성의 독립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다. 종속의존적인 육신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어떠한 형태의 선행도 하나님과 무관하다. 모세가 종속의존 육신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여호수아의 독립적-협력성과 대조된다. 모세가 가데스에서 물을 내기 위해서 바위에게 명하지 않고 막대기로 치는 장면이 민수기 20장에 나온다. 모세는 지난 30여 년에 걸쳐 들어온 백성들의 불평을 또 들어야 했다. 위기다. 한계에 다다른 무결점 모세의 숨겨진 육신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 물 사건은 십계명 돌판 사건과는 달리 모세 자신의 육신에 의한 사건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자신의 육신을 대면하도록 하셨다. 거룩함을 나타낼 결정적인 순간에 모세는 자신의 육신인 종속의존성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달랐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 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수 24:15).



    여호수아는 오래도록 동고동락한 백성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고, 다른 길을 가기 원하는 그들의 의견까지도 존중했다. 3,000년 전에 이토록 철저히 독립적-협력적인 영성이 있었다는 점이 참으로 놀랍다. 모세의 물 사건을 보며 여호수아는 육신과는 결단코 무관한 거침없는 신위적 믿음의 세계를 보았을 것이다. 주인의 실수를 통해서 기막힌 영의 세계를 본 여호수아의 행동은 결코 인간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의한 것이다. 이 세계는 능력이나 재주나 훈련이나 어떠한 육신으로도 경험할 수 없는 세계다. 만일 모세가 겪은 영혼의 밤을 목격하지 않았다면 과연 여호수아가 이러한 영성을 가질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 지혜로는 알 수 없으나, 결코 모세의 삶을 떠나서는 여호수아의 영성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종속의존 육신은 수직적인 문화의 영향으로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가장 흔한 육신이다. 이는 태아로부터 유아기를 거치 면서 가족 관계에서 대부분 형성된다. 모든 인간은 필요를 지닌 채 태어난다. 외적 필요가 의식주라면 내적 필요는 사랑, 소속감, 존재 가치 등이다. 가장 중요한 내적 필요는 조건 없는 사랑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 


    하나님은 인간을 의존형으로 만드셨다. 하나님을 의존하면 인간으로부터는 독립적으로 살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모르고 태어나 부모를 의지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생존을 시작한다. 아이는 태어나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며, 배가 고프면 우유를 주기 전까지 목청이 터지도록 울어 대며 부모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요구한다. 부모는 본능적으로 자 식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나름대로 사랑하지만 조건 없는 사랑은 줄 수 없다. 부모 또한 조건 없는 사랑이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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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호진 교수 


    약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이민 

    1981년 오하이오주립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2011년 정년 후 해외 직장생활을 접고 36년 만에 한국으로 귀국.

    삼성물산 고문을 지냈으며,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산학협력교수,

    현재는 한동대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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