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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호진 교수의 영혼의 밤] 제2장 영혼의 밤의 실제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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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의 밤과 믿음


    믿음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믿음을 두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 보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위적’(人爲的) 믿음과 ‘신위적’(神爲的) 믿음이다. 인위적 믿음은 —스스로 만들어 낸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의 필요’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이고, 신위적 믿음은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믿음이다. 다음 구절은 ‘주님의 필요’를 분명하게 나타낸다. 즉, 우리의 육신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상태다.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막 11:3).


    주님은 예루살렘 입성을 위해 당나귀와 제자들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먼저 두 제자를 부르시고, 그들에게 당나귀를 끌고 오라고 명하셨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겉옷을 얹어 당나귀 등 위에 안장을 만들어 드리고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완성했다. 이것이 ‘하나님의 필요’고 ‘하나님의 일하심’의 순서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고 우리는 받는다(벧 후1:1). 병자에게 의원이 필요하듯(눅 5:31) 인간은 자신의 필요에 의해 하나님을 찾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인위적 믿음을 받고 신앙생활을 시작한다. 신위적인 믿음은 숨겨진 육신이 철저히 무력화(無力化) 될 때 경험된다. 신자가 이 두 믿음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시간이 영혼의 밤이다. 이 밤은 우리로 인위적 믿음에서 신위적 믿음으로 옮겨 가게 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기도 하고, 단지 통증만 증가시켜 쓴뿌리를 만드는 힘든 시간이 되기도 한다. 


    “…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고후 5:16).


    위의 구절에서 ‘이제부터’는 시간적 경계를 의미한다. 이전에는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주님을 알게 되었으나, 이후로는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신위적인 믿음으로 살겠다는 선포가 이루어지는 경계점이다. 인위적 믿음은 어떻게든 자신을 더 잘 포장하려고 하지만 신위적인 믿음은 스스로 꾸민 포장을 풀어헤친다. 상처 회복을 위해 반창고로 덮으면 곪지만, 상처 부위를 열어 놓으면 딱지가 앉고 새살이 돋아나는 이치다. 상처가 나지 않았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신비한 하나님의 세계가 상처를 통해서 경험된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나의 필요가 강렬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절대로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우리의 필요가 하나님과의 연결 다리로 사용되면 인위적 믿음이다. 그 후에 믿음 성장이 중지되면 관성적 종교 생활이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 믿음은 주어지는 것이므로 점진적 훈련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신위적 믿음의 경험과 성숙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 중 한 가지가 ‘영혼의 밤’이다. 황량하고 처절하고 거친 광야와 같이 영혼의 밤이 혹독할수록 우리의 육신이 더 잘 드러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육신은 절대로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기에 우리로 하여금 종노릇하게 한다.


    인위적인 믿음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각양 좋은(약 1:17) 것을 원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도 우리 속에 머무르면 저주로 변한다. 여호수아는 율법이 저주와 축복의 책(수 8:34)임을 증거한다. 이에 대해서는 율법 속에 저주와 축복이 동시에 포함되었다는 해석보다는, 어떠한 축복도 인위적인 믿음에 속하면 저주로 변할 수가 있다는 해석이 더 합당하다. 하나님께서 이 땅의 만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드신 궁창 위의 물(창 1:7, 욥 26:8)이 인간의 죄악을 심판하기 위해 홍수로 쏟아져 마침내 호흡하는 모든 동물을 죽이는 흉기로 돌변한 것(창 7:11)처럼 말이다. 나의 자유와 안전을 위해서 만들어 주신 시간이나 공간의 경계가 어느 날부터는 나를 속박하는 굴레로 비쳐지기 시작하면 인위적인 믿음 속에 갇혀 있다는 방증이다.


    반면 신위적인 믿음 안에 머무는 사람은 다음의 다섯 가지가 일치한다. 


    생각=느낌=언어=행동=믿음


    신위적인 믿음 세계는 사실에 근거한 실제적인 경험의 세계이기 때문에 이 믿음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해야 한다. 즉, 하나님은 우리의 고백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다음 세 가지 과정을 거쳐 우리로 직접 확인하게 하시고 신위적인 믿음을 경험하게 하신다.


    ① 쌓아온 모든 것을 잃는다.

    ② 숨어 있던 육신이 드러난다.

    ③ 하나님과 독대하고 회개한다. 

    < 계속>


    성경적 상담 세미나 문의: isaya50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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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호진 교수 


    약력: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이민 

    1981년 오하이오주립대학원에서 박사학위 취득

    2011년 정년 후 해외 직장생활을 접고 36년 만에 한국으로 귀국.

    삼성물산 고문을 지냈으며, 포항공과대학교에서 산학협력교수,

    현재는 한동대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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