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용환의 예술묵상] 클로드 로랭의 “나를 만지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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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li Me Tangere (Latin for "Touch Me Not")
나를 만지지 말라, 1681, 클로드 로랭
슈테델 미술관 (프랑크푸르트, 독일)
이 풀꽃 |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클로드 로랭의 풍경화를 보면서 언뜻 생각난 시입니다. 다들 전문가 급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이 시대에, 나태주 시인의 이 짧고 강렬한 시 한편이 미친 영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엔 누가 보아도 아름다울 만한, 미의 표준을 추구했습니다. 사진 작가들의 영역에 휴대폰 작가들이 도전하는 형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남들이 보지 않는 부분들을 담아냅니다. 소소함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본인들은 모를 수 있겠지만, (조금 과장하자면) 나태주의 시를 통해 우리 시대는 인식의 전향을 맞이했습니다.
사실 아름다운 것은 아마추어 작가의 시선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너도 그렇다”는 알쏭달쏭한 비밀을 풀어냅니다. 답을 알지만, 여전히 신비합니다. 사람이 자기 일을 찾게 된다는 것, 자기의 색, 자기 목소리를 갖게 되는 것만큼 창조주 입장에서 신나는 일은 바로 자기 시선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자세히 보기”, “오래 보기”를 통해 풍경과 사람 속 이야기를 발견하는 시선, 이것이 풍경화의 아버지 클로드 로랭이 우리에게 내준 오늘의 숙제입니다.
부활의 새벽입니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죽음과 부활을 살아내 왔던 큰 나무들, 작은 풀들은 우두커니 말이 없습니다. 예루살렘 너머 지평선에서 솟아오르는 빛은 침묵 대신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은 아침인가? 저녁인가? 밤으로 향하는 시간인가? 낮을 향해 가고 있는가? 죽음을 향한 애도의 시간인가? 생명의 부활을 향한 찬양의 시간인가?”
그 안에 우리가 언제나 우주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던 인간들은 아주 작게 묘사됩니다. (클로드의 작품이 대개 그렇습니다.) 광대한 자연의 문법 안에 하나의 쉼표같은 쓰임새입니다. 인간의 인식의 한계는 넘는 사건이지만, 온 천지는 부활을 익히 알고 있는, 그 날 새벽… 쉼표 같은 인간들의 분주함을 자세히 들어다 봅시다.
오른쪽을 먼저 보십시오. 십자가가 세워진 척박한 돌산 밑입니다. 고난과 죽음과 공허의 상징입니다. 무덤의 입구가 열려 있습니다. 천사가 무덤을 지키고 있고, 향료를 들고 새벽길을 달려온 여인들은 망연자실 서 있습니다. 그 여인들의 이름은 여러가지입니다.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혹은 요안나… 그리고 두 명으로 상징됐지만 여러 여인들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향기롭게 하고자 왔으나,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만지고 싶으나 만질 수 없는 자리에 선 여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왼쪽을 보십시오. 풍성한 나무 숲을 배경으로 두 인물이 있습니다. 생각보다 훤칠한 예수님, 그리고 그 앞에 몸을 낮춘 마리아입니다. 흐릿하지만, 방금 스승을 만난 여인의 몸짓이 분명합니다. “라뽀니”하고 외치자 마자 달려들 듯한.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만지지 말라”(정확히는 “나를 붙잡지 말라”). 만질 수 있지만 만질 수 없었던 여인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작가 로랭은 복음서 말미에 혼재된 이야기를 한 풍경에 담아냈습니다. 진실은 이렇습니다. 여인들이 찾아갔으나 빈 무덤이었고, 막달라 마리아는 끝내 예수를 만납니다. 빈 무덤가 여인들은 만질 대상이 없어서 못 만졌고, 막달라 마리아는 만질 대상을 만났으나 못 만졌습니다. 만지지 말라는 명령은 거절이 아닙니다. 만져서 믿는 신앙의 단계를 뛰어 넘은 자리에서, 증언이 시작됩니다. 애착 인형처럼, 뭔가를 꽉 쥐고 놓지 않으려고 할 때 우리 성장의 닻은 거기서 박혀 버리고 마니까요.
풍경을 감싸고 있는 빛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손에 잡히지 않으면서도 온 화면을 가득 채우는 저 새벽빛처럼 진리는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서 있는 경험입니다.
묵상을 돕는 질문
• 지금 내가 너무 꽉 쥐고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나요? 그것을 손에서 내려 놓을 때, 어떤 새로운 일이 시작될 수 있을까 상상해 봅시다.
• 오늘 내 삶에서 “자세히 보기”와 “오래 보기”가 필요한 사람이나 순간은 어디인가요?
손 모아 기도합시다.
주님, 제가 붙잡으려는 손을 내려놓고, 당신이 보내시는 자리로 기꺼이 걸어가게 하소서. 손에 잡히지 않으면서도 온 세상을 가득 채우는 부활의 빛 안에 오늘 하루 서 있게 하소서.
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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