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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용환의 예술묵상] 조토의 “나사로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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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25 Scenes from the Life of Christ: 9. Raising of Lazarus

나사로의 부활, 1304, 조토 디 본도네

스크로베니 경당 (파도바, 이탈리아)



바위를 파낸 무덤에서 한 남자가 걸어나옵니다. 온 몸이 하얀 천으로 돌돌 감겨 있습니다. 아직은 말도 없고, 표정도 얼떨떨 하지만, 분명히 살아났고, 꼿꼿이 서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죽어서도 말씀을 들었습니다. 말씀에 응답했습니다.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작가는 부활이라는 기적을 작품으로 펼쳐내면서 사건 자체로 승부를 보기로 합니다. 하얀 연기가 자욱한 것도 아니고, 폭발 효과를 집어 넣은 것도 아닙니다. 하늘에서 섬광이 반짝 하거나, 부활에 맞춰 서광이 비추지도 않았습니다. 


어른 소설은 대개 밋밋하지만 심오하고, 어린이 만화는 재밌지만 간결한 특색이 있습니다. 당대의 비잔틴 사조는 핵심 인물만 부각시키면 그만이었습니다. 금박을 과도하게 사용하고, 주요 인물을 크게 그리고, 특수 효과로 장식하면 배움이 없던 백성들은 누구를 보고 감동해야 하는지 금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만화의 시대였습니다. 르네상스의 문을 열었다는 작가 조토는 심오함을 더 추구했습니다. 만화 대신 소설의 느낌, 조금 더 성숙한 시대를 앞서 예비했습니다. 그 결과 이 작품을 포함하여 조토의 작품으로 천장까지 가득찬 스크로베니 경당 안에 들어가면 신비로 가득찬 느낌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특수효과를 대신하여 사람으로 승부를 보기로 합니다. 비잔틴의 오묘함과 경건함을 뒤로 하고, 대신 표정을 집어 넣기로 합니다. 1300년대에 주인공이 아닌 무리의 얼굴에 놀라움과 경이, 의심과 두려움 같은 표정을 집어넣다니, 이것은 혁명이었습니다. 증명사진 같은 이콘의 시대는 서서히 저물고, 자연스러운 스틸 사진처럼 인물의 손짓과 표정이 사건을 이야기하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흙을 빚어 다리 몸통 머리로 이어지는 형상을 빚고, 손짓과 표정으로 마무리하듯 조토는 작품 속 개별 인물들 위에 숨을 불어 넣었습니다. 숭배의 대상에서 대화의 대상으로 내려왔지만, 그 이야기는 더 선명했고, 호흡까지 느껴질 정도로 감정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배경이 되는 바위 무덤으로 다시 시선을 돌려봅니다. 우상향으로 이어진 경사는 오늘 이야기의 시작이 어디인지 가리킵니다. 기적의 출발점,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었습니다. “나사로야 일어나라”는 말씀이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 사건을 조명합니다. 예수께서는 손을 들어 나사로를 부르십니다. 


시선을 나사로로 옮겨봅니다. 나사로를 둘러싼 존재들은 세 부류입니다. 나사로의 뒤편에는 냄새로 인해 호흡기를 가린 사람들, 나사로의 앞편에는 제각기 표정으로 말하는 의심하는 세력들, 적개심을 가진 군중들, 그리고 무덤 아래편에 열린 무덤문을 옮기는 사람들. 공통점은 모두 꼿꼿이 서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시선을 예수의 발밑으로 옮겨봅니다. 엎드린 여인들, 베다니 마리아와 마르다입니다. 예수의 발치에 완전히 무너져 있습니다. 남자 형제를 잃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예수님이라면 무엇이라도 해주실지 모른다는 가느다란 소망이 합쳐져 그녀들을 쓰러지게 했고, 또 엎드려 간구하게 했습니다. 서 있는 남성들과 엎드린 여성들의 대조입니다. 죽음에 가까운 여인들의 엎드림은 부활을 탄생시켰고, 생명력 있게 꼿꼿이 선 남성들은 부활 앞에서도 의심을 거두지 못합니다. 


부활 사건 앞에서 당신의 자리는 어디인가? 작품은 넌지시 물음을 던집니다. 꼿꼿이 선 채 의심하는 군중 속에 있습니까. 그들의 눈은 열려 있었지만, 눈앞의 기적보다 자신의 판단이 더 컸습니다. 아니면 마리아처럼 완전히 무너져 있습니까.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다만 엎드려 있습니까. 기적을 일으킨 것은 예수의 말씀이었고, 그 말씀의 통로가 된 것은 무너진 자들의 간구였음을 작품은 7백년째 묵묵히 말하고 있습니다. 


나사로는 보지 못했습니다. 손도 발도 눈도 묶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들었습니다. 그리고 일어섰습니다. 믿음이란 어쩌면 그런 것인지 모릅니다. 다 보이지 않아도, 다 풀리지 않아도, 부르시는 음성 하나에 몸이 먼저 반응하는 것일지도.


묵상을 돕는 질문

 

• 나는 지금 이 그림 속 어디에 서 있습니까 - 꼿꼿이 선 채 분석하는 군중 속입니까, 아니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 엎드린 자리입니까?

• 내 삶에서 아직 천에 감겨 있어 보이지도, 움직이지도 못하는 것이 있다면, 지금 들려오는 부르심은 무엇입니까?


손 모아 기도합시다.


아직 많은 것이 감겨 있고 풀리지 않았지만, 부르시는 음성만 믿고 일어서게 하소서. 무너진 자리가 기적의 통로가 됨을 기억하며, 오늘도 주님의 발치에 엎드리오니 말씀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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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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