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용환의 예술묵상] 두초의 “선천적 시각장애인의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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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ing of the Man Born Blind
선천적 시각장애인의 치유, 1307, 두초 디 부오닌세냐
내셔널 갤러리 (런던, 영국)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필두로 왼편의 일행들이 보입니다. 예수 공동체입니다. 기존의 종교 지도자들이 보기에 위험한 집단입니다. 떼로 몰려다니며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자들입니다. 지난번 베데스다 연못가에서도 38년된 병자를 안식일에 고치더니, 이번에도 나면서부터 시각장애인이 된 자를 또 안식일에 고쳤습니다. 기득권의 심기는 불편합니다. 모세의 율법은 아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든, 물이 포도주가 되든, 병자가 낫든, 그 결과가 얼마나 영적이고 신비한지는 관심 밖입니다. 그저 절차상의 문제는 없는지에만 몰두합니다.
예수 공동체의 행렬을 보니 마치 유유히 미끄러져 들어오는 뱃머리가 연상됩니다. 그 선두에 후광을 비추며 빛으로 오신 이께서 손을 뻗습니다. 평생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본적 없는 이의 눈을 향합니다. 예수님의 진흙 이긴 손이 그 눈에 닿는 순간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적은 찰나의 순간입니다. 두초는 그 짧은 시간의 변화를 마치 반복되는 짧은 동영상처럼 한 장면 안에 겹쳐 놓았습니다. 사람은 같은 사람이지만, 존재의 의미는 다른 사람입니다.
작가는 가로세로 2차원으로 이루어졌던 비잔틴 방식의 회화 세계에 마침표를 찍습니다. 3차원의 건물 묘사를 통해 중세인들에게 그간 한 번도 본적 없는 원근감을 선사합니다. 게다가 시간의 흐름까지 한 장면 안에 담아냈으니, 3차원에 한 개의 차원을 더해 냈습니다. 작가가 물리학이나 4차원 같은 것은 몰랐을지라도, 세상이 규정하지 못한 세계를 표현하고 구현해 내는 것이 곧 예술가의 몫입니다.
작가는 시간의 흐름을 넓게 펼쳐서 멈춰봤습니다. 그 결과 쌍둥이처럼 보이는 <두 존재-한 사람>을 수수께끼로 제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수백 년의 시간 동안 그 작품 속에서 “빛을 만나 빛을 얻은 이”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느 쪽 사람입니까?
치유받기 전의 존재는 눈을 감고 있습니다. 아니 떠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태어났고, 세상이 그렇다길래 그저 죄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런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주신 분이 나타납니다. 예수께서 흙을 짓이겨 눈에 바르십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고통은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단언하십니다. 그리고 다가가 주시고, 만져 주시고, 치유하여 주십니다.
치유받은 후의 존재는 눈을 뜨고 있습니다. 찬송가 가사대로 잃었던 생명 찾았습니다. 광명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동냥으로 이어가던 인생, 지팡이에 의지해서 한 걸음씩 내딛던 인생 살아갈 때는 죄인이라고 구박은 했지만, 먹고 살 수는 있었습니다. 눈을 떠보니 현실이 더 냉혹합니다. 더이상 아무도 동정하고 돕지 않습니다. 보호받지 못하는 증인처럼 여기 저기 끌려다니며 허위자백을 요구받습니다. 부모도 나 몰라라 합니다. 눈 감았을 때는 온정과 도움의 손길이 느껴졌습니다. 눈을 뜨고 본 세상은 적대와 외면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성전 앞 일자리도 뺐겼습니다. 이것이 오른편 치유받은 시각장애인의 버려진 지팡이가 상징하는, 치유의 명과 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앞 못 보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잘 보게 되었다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그의 증언의 전부입니다. 담백합니다. 오직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말할 뿐입니다. 그 단순함이 오히려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적대자들은 시끄럽습니다. 복잡한 절차, 날짜 운운합니다. 복음은 단순합니다. 그리스도의 빛은 어둠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고 밝힙니다. 고요하게, 진실하게.
묵상을 돕는 질문
• 나는 지금 어느 쪽 사람입니까 -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채 세상이 규정해준 대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빛을 만난 후의 냉혹한 현실 앞에서도 내게 일어난 일을 담백하게 증언할 수 있습니까?
• 나는 하나님의 일 앞에서 바리사이파처럼 절차와 날짜를 먼저 따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 내 삶 안에서 이미 일어난 치유와 변화를, 나는 얼마나 정직하게 바라보고 있습니까?
손 모아 기도합시다.
주님, 눈을 뜨고도 보지 못하는 저의 완고함을 고쳐 주시고, 당신께서 제 삶에 이미 만져주신 그 회복된 상처를 두려움 없이 바라보게 하소서. 세상이 외면하고 적대할지라도, 담대하게 그리고 담백하게 증언할 수 있도록 굳건한 믿음을 허락하여 주소서.
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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