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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용환의 예술묵상] 카라치의 “그리스도와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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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 and the Samaritan Woman at the Well  

그리스도와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16세기 후반, 안니발레 카라치

브레라 미술관(밀라노, 이탈리아)



작품의 정 중앙에는 한 여인이 서 있습니다. 정오의 햇살이 수직으로 내리쬐어 그림자조차 한 뼘에 불과한 그녀는 일명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어둑한 주변과는 유난히 다른 명암의 차이가 있습니다. 마치 <타임랩스>를 촬영하듯 “정오의 그녀”와 “해질녘의 예수 일행”로 해체하고, 그 두 시간대를 한 캔버스에 합쳐서 재구성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늘의 시선이 마치 핀조명처럼 그녀를 향하고 있음을 작가는 절묘하게 표현했습니다. 근동 지역에서 너무 더워서 아무도 활동하지 않는 시간, 호젓한 시간을 선호해서 나온 것이 아닌, 남의 눈을 피해서 나오던 그녀에게 마치 시공간이 겹쳐지듯 뜻밖의 만남이 펼쳐졌습니다. 


여인의 시선을 따라가 봅니다. 발걸음은 거절을 뜻하며 다른 방향을 향하지만, 눈빛에는 혹시나 모를 구원에의 갈망이 서려 있습니다. 모나리자의 표정처럼 이 여인에게서 표출되는 양가 감정은 우리를 이입시킵니다. 우리도 정확히 그 심정으로 살아가니까요. 그리스도 앞에 섰지만 “직면”할 깜냥은 못되고, 손과 발은 “당장 할 일”과 “방어 기제”로 갈팡질팡합니다. 그래서 저 여인처럼 몸과 마음이 배배 꼬인 채 살아갑니다.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한 작가는 후대의 화가들에게 여인의 자태에 대한 영감을 전수합니다. 


예수께서는 주거니 받거니 하던 대화에 쐐기를 박으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아직 물을 긷지도 못했지만, 무게 중심은 이미 예수께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예수께서는 지평선 너머를 가리키시며 세상사에 지치고 구르다 닳고 닳은 그녀에게 아직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암시하십니다.  


왼편에는 제자들이 하나 둘씩 우물가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어둑한 걸 보니, 마을에 음식을 구하러 갔다가 해질녁쯤에야 돌아온 듯 합니다. 그러다 문득 낯선 여인과 대화중인 스승 예수님을 바라보고 놀랍니다. 무슨 이야기 중일지 궁금하지만 차마 물을 수 없는 그들은 서로 귀를 기울인 채 수군거립니다. 그들은 경계를 넘어서 복음을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들입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제자들에게는 그늘이 전부입니다. 그리스도의 신성한 빛이 비치지 않습니다. 신성함으로 빛나는 존재는 오직 사마리아 여인 뿐. 다양한 상황을 고려한 작가의 중층적인 설정이 돋보입니다. 


다시 작품을 전체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중심에 선 여인의 삶의 궤적을 다시 헤아려 봅니다. 남편 없는 여인, 다섯 번의 결혼, 사마리아 공동체로부터의 낙인, 그리고 그 사마리아 공동체는 또한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의 낙인으로 끝나지 않는 배격과 추방의 쳇바퀴 속에서도 물은 마셔야 하는 한 생명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초라하지 않습니다. 황금빛 옷을 입고 빛 속에 감싸여 있습니다. 그녀도 아름다운 한 존재임을 작가는 발견했고 과감히 드러냈습니다. 예수님이 아닌 부정한 여인이 중앙에 서서 주인공의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셔서 구원해 주신 주인공, 그 빛나는 자리에 설 수 있듯이 말입니다. 이것이 복음이 말하는 진실입니다. 


말씀과 이미지를 상상하며 함께 묵상합시다.

 

• 지금 내 삶에서 "정오"는 어디인가요? 아무도 없는 시간에 혼자 감당하고 있는 것이 있나요?

• 하나님의 핀조명이 오늘 내 삶의 어떤 자리를 비추고 있나요? 낙인과 배격의 쳇바퀴 속에서도 "물은 마셔야 하는" 나의 가장 솔직한 목마름은 무엇인가요?


손 모아 기도합시다.


숨어 다니던 그녀를 찾아내신 주님, 오늘도 저의 가장 부끄러운 삶의 자리에서 먼저 기다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자리가 도리어 주님을 만나는 자리, 빛의 자리임을 믿으며 나아가오니 받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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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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