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용환의 예술묵상] 브뤼헐의 “그리스도의 유혹이 있는 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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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untain Landscape with the Temptation of Christ
그리스도의 유혹이 있는 산 풍경, 1605-1610, 얀 브뤼헐
빈 미술사 박물관 (비엔나, 오스트리아)
루벤스와 친구 사이로서 서로 잘하는 부분을 가지고 협업했던 작가 얀 브뤼헐의 작품입니다. 작품에 앞서 “오감”이라는 제목으로 협업했던 당시 작품 구성과 인물은 루벤스가, 시각, 청각, 촉각 등 감각을 표현할 수 있는 사물들의 묘사는 브뤼헐이 담당했을 정도였습니다. 작가는 결국 “벨벳 브뤼헐(Velvet Brueghel)”로 불리며 나뭇잎 하나 하나, 풀 한 포기까지 극도로 정밀하게 묘사하는 당대 최고 수준의 섬세함을 자랑했습니다.
사순절을 맞이하여 “그리스도의 유횩”을 다룬 작품들을 살펴봅니다. 대체로 황량한 광야 위에서 고뇌하는 그리스도’라는 공통의 문법 안에서 자기 색을 냅니다. 그런데 유독 이 작품은 문법이 다릅니다.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나무들이 눈에 띕니다. 전경과 원경 모두 깊이가 있고 아름답습니다. 형형 색색의 나뭇잎들, 이끼 낀 돌과 살아 있는듯한 나무 뿌리를 보고 있자면, 마치 그 숲의 새 소리, 바람 소리까지 들리는 듯 생생합니다.
풍경을 먼저 감상하고, 한참 뒤에 그 숲 어딘가에 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두 존재는 작습니다. 작품의 주인공이 매몰될 만큼 매혹적인 세계가 압도적입니다. 아마도 ‘빵의 유혹’과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보라는 유혹’을 이겨내신 그리스도에게 마지막 시험의 관문인 듯 합니다. 악마는 예수를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화려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거래를 시작합니다. “당신이 내 앞에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누군가로부터 받는 것, 곧 선물의 의미는 결국 미의 추구입니다. 쓸모보다 더 높은 가치는 아름다움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모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오히려 얼마나 세상이 아름다운지 아셨기에 사랑하셨고, 우리 곁에 와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토록 아름다운 만유의 주재가 누구이신인지, 그 주인이 누구에게 그 아름다움의 이름을 붙일 권한을 주셨는지 예수께서는 찰나의 순간 돌아보셨습니다. 그리고 나직하게 말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소유로부터 해방되시자 선포된 예수의 ‘선 긋기’입니다.
예수께서는 마치 대동강물 팔아먹는 김선달같은 사탄의 사망 권세를 물리치셨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신 분이 바로 아버지셨기에, 눈 앞에서 유혹하며 그 아름다움을 팔려는 존재의 정체를 알아내셨습니다. 아름다움의 주권을 가진 이는 따로 있는데, 주네 마네 하는 구조를 깨뜨린 방법은 바로 유혹자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C.S.루이스는 “악은 목적을 이루기 전까지는 거의 악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희미한 실루엣 속에 선의와 미소로 가장한 그 손길을 거부하고, 정체를 밝힐 때 천사는 찾아오고 악마는 물러갑니다.
이 작품에서 예수님은 영웅의 서사를 보이지 않습니다. 절규함으로 악의 본질을 파헤치지 않습니다. 숲의 중심에서 해결사적 면모를 보이거나, 승리의 깃발을 들지 않습니다. 유혹으로부터의 승리도, 신의 아들로서의 새롭게 열어내는 서막도 고요한 영적 여정입니다. 숲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물은 졸졸 흐르고, 새는 여전히 지저귑니다. 다만 나뭇가지 사이로 비추는 서광이 아름다움에 입체감을 더해 주며,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손짓합니다.
말씀과 이미지를 상상하며 함께 묵상합시다.
• 악마가 내민 유혹은 아름다운 세상 그 자체였습니다. 브뤼헐의 숲처럼,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아름답고 좋은 것들 중에서, 내가 "소유"하려는 욕망으로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를 나는 알고 있습니까?
• 예수께서는 유혹자의 이름을 불러 정체를 밝히셨습니다. 지금 내 삶에서 선의와 미소로 가장한 채 나를 흔들고 있는 것이 있다면, 나는 그것을 직면하고 이름을 부를 용기가 있습니까? 혹은 아직 그 정체를 보려 하지 않고 있습니까?
손 모아 기도합시다.
아버지, 이 세상의 아름다움이 당신의 것임을 압니다. 소유하려는 손을 내려놓고, 그저 받은 자로 살아가게 하소서. 유혹이 아름다운 얼굴로 올 때, 예수께서 그러하셨듯 그 이름을 알아보는 맑은 눈을 허락하시고, 고요하되 단호하게 "물러가라" 말할 수 있는 입술을 주소서.
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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