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용환의 예술묵상] 렘브란트의 “감옥 속의 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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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속의 바울, 1627, 렘브란트
슈투투가르트 미술관(슈투투가르트, 독일)
"그 때야말로 너희가 나의 복음을 증언할 때이다."(누가복음 21:13)
음습한 어둠이 내려 앉은 감옥에서 골똘히 뭔가를 생각하는 바울의 모습, 과연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손을 입에 대고 있는 바울의 첫인상은 마치 감옥의 수인이 아니라, 작가처럼 보입니다. 쇠고랑도 보이지 않고, 창가의 그림자로 짐작할 수 있는 쇠창살의 존재조차 억압의 감정을 전달하지 않습니다. 조정래는 자신의 작업 환경을 “황홀한 글 감옥”이라고 말했고, 세계적인 중국 작가 위화도 “글쓰기의 감옥”이라는 두 단어로 자신의 일터를 묘사했습니다. 어찌 보면 감옥과 사도 바울,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인과관계로 얽혀 있는 듯합니다.
바울의 손끝을 살펴봅니다. 쇠사슬에 묶인 흔적도 없이 펜을 쥔 손은 자유롭습니다. 세상은 위험 인물인 바울을 사회와 분리시키려 했지만, 그 강요당한 침묵의 순간, 그는 세상에 증언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손은 그 누구도 묶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바로 ‘옥중서신’입니다. 박해가 증언을 막는 것이 아니라, 증언의 무대이자 일터를 제공하니, “그 때야말로 너희가 나의 복음을 증언할 때”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실감납니다.
바울의 얼굴을 살펴봅시다. 출산의 고통없는 창작은 없습니다. 그는 감옥 안에 있지만, 단순한 감옥이 아닌 이중 감옥입니다. 빛나는 신앙의 고백을 터져 나오게 한 ‘글쓰기의 감옥’에서 황홀한 순간을 맛보고 있습니다. 작지만 개방된 창에서 흘러 나오는 빛이 그의 얼굴을 환히 비추고, 그의 손끝과 말씀이 적힌 종이까지 여전히 밝히고 있습니다. 도저히 감옥 안에 있는 수감자의 고뇌라고 볼 수없는 평화가 깃들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마음껏 묵상하며, 교회를 힘껏 돌아보며, 절제된 언어로 증언하는 한 존재의 얼굴이 여기 있습니다. 그는 박해받는 순간이 가장 강력한 증언의 순간이 됨을 몸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발을 살펴봅시다. 한쪽 신발이 벗겨져 있습니다.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신을 벗었듯이, 이 자리가 바로 거룩한 성소임을 작가는 암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한쪽 발부터 벗어나감으로 박해받는 이 자리가 원망과 괴로움의 자리가 아닌, 성소임을 조금씩 깨달아가는 과정 중에 있음을 보여줍다.
끝으로 주변을 살펴봅시다. 바울이 앉은 자리 우편에는 말씀과 칼이 보입니다. 복음의 증언 그리고 순교를 상징합니다. 감옥이 그의 생각을 막을 수 없듯이, 죽음도 그의 증언의 길을 가로막을 수는 없습니다. 감옥이 설교단이 되는 역설이 복음입니다. 활동이 중단되고, 침묵을 강요당하는 “그 때”가 “증언의 때”가 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작동 방식입니다.
말씀과 이미지를 상상하며 함께 묵상합시다.
• 내 삶의 '감옥'은 어디이며, 그곳을 '증언의 성소'로 바꾸기 위해 내가 벗어야 할 '신발' 한 짝은 무엇입니까?
• 내 삶의 “그 때”, 즉 박해와 억압의 때가 오히려 복음을 증언할 가장 강력한 기회가 되었던순간은 언제였습니까?
손 모아 기도합시다.
주님, 제 삶의 감옥을 원망의 자리가 아닌 거룩한 성소로 바라보게 하소서. 침묵을 강요당하는 바로 그 순간이 가장 강력한 증언의 때임을 깨닫고, 사슬 속에서도 자유함을 얻어 복음을 살아내게 하소서.
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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