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용환의 예술묵상] 브뤼헐의 “카니발과 사순절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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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발과 사순절의 싸움, 1559, 대 피터르 브뤼헐
빈 미술사 박물관(빈, 오스트리아)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광장입니다. 주점과 교회를 배경으로 행렬이 갈립니다. 카니발과 사순절이 교차하는 어느 날, 관성을 놓치기 싫은 카니발 파(?)와 경건의 시작을 주장하는 사순절 파의 대결이 시작됩니다. 그 중심에는 맥주통에 올라탄 정의의 기사, 뚱보가 있습니다. 창대신 든 쇠꼬챙이에는 돼지머리와 거위의 몸통과 닭 다리로 만들어진 카니발의 우상이 걸려 있습니다. 맞은 편에는 수척한 여인이 수레에 앉아 있습니다. 머리 위에는 교회를 상징하는 벌집이 얹어 있고, 화덕용 나무판을 무기 삼아 그 위에 물고기 두 마리를 얹어 진군합니다. 그 뒤를 따르는 아이들은 이마에 십자가를 새긴 채, 딱딱하게 마른 빵을 먹으며 전진합니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닙니다. 카니발 쪽 뚱보는 술통을 타고 있으니 바리새들이 비아냥대던 “먹보요 술꾼”입니다, 금욕쪽 상징은 풍성함과 생명력을 암시하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이라니 의도적 ‘미쓰 매치’입니다. 그림에 담긴 진짜 의미와 비밀을 어디 찾을테면 찾아보라는 호연지기가 담긴 작품입니다. 과연 어떤 스토리가 숨겨져 있을까요?
작품 안에서 일사분란하게 카니발과 사순절, 향락과 금욕, 육체의 쾌락과 영혼의 정화, 각 진영의 톱니바퀴가 거대하게 굴러가고 있습니다. 모두 인간의 단면입니다. 양측 다 기세 등등한 채, 물러설 의향이 없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이 광장에는 생명력으로 가득합니다. 인간은 축제만으로 살 수 없고, 또 경건만으로도 살 수 없습니다. 이 작품은 “버드 아이(bird’s eye)”라는 높은 각도에서 광장을 바라보게 구성됐습니다. 마치 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효과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시던 하나님, 잔치를 위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던 예수님 모두 경건과 축제가 공존하는 이 광장을 지켜보실 것입니다.
작품이 신의 관점에서 묘사했듯이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경건”과 “축제”의 공존이라는 과제는 우리 생각처럼 시간의 흐름에 맞추어 한 걸음씩 사이좋게, 혹은 정중하게 나아가는 방식이 아닙니다. 공존이란 옥신각신 다투기도 하고, 우당탕탕 뒤집어지기도 하면서 사람 냄새 나는 시장 바닥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바리새나 사두개인들처럼 자기 주장만 하면서 의미 없는 논쟁에만 몰두한다면, 진절머리가 날 것입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하여도 울지 않는”(눅 7:32) 그런 곳에 깃들 생명력은 없습니다.
작품의 비밀은 바로 그림의 중앙부 우상단의 아이들에게 있습니다. 아이들은 시간의 블랙홀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아무 물정 모른 채 놀이에 심취해 있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어디에 속해 있는지, 지금이 어느 시즌인지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작품 중앙 상단부 어른들도 남의 싸움에 관심 없는 듯, 강강수월래를 하며 돌고 있습니다. 작가는 올바름을 위한 투쟁보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은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놀이>라는 신의 힌트를 곳곳에 은밀히 삽입해 놓았습니다. 세상이 정해준 시간표가 아닌,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때와 주어진 일을 아는 존재는 복됩니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 광장 한 구석, 교회 뒷뜰 나무에는 겨우내 앙상했던 가지에 물이 차오릅니다. 봄이 다가오는 신호수로써 잎이 돋아납니다. 수십 수백의 계절을 지켜봤던 나무, 봄이 올 때마다 부활을 경험하는 나무도 작가처럼, 버드 아이와 같은 위상에서 생명이 움트는 광장을 바라봅니다.
말씀과 이미지를 상상하며 함께 묵상합시다.
• 나는 지금 카니발과 사순절 중 어느 쪽에 서서, 반대편을 향해 무엇을 휘두르고 있습니까?
• 세상이 정해준 시간표가 아닌,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때를 분별하며 살고 있습니까?
손 모아 기도합시다.
하나님, 싸움의 광장 한가운데서 당신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하소서. 당신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자이니, 저로 하여금 죽음이 아닌 부활의 언어로 이 땅을 살게 하소서.
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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