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용환의 예술묵상] 블레이크의 “그리스도의 발을 씻는 마리아”
페이지 정보
본문
그리스도의 발을 씻는 마리아, c 1805, 윌리엄 블레이크
필라델피아 미술관 (Philadelphia, PA)
순수의 전조 | 윌리엄 블레이크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려면
손 안에 무한을 쥐고
찰나 속에서 영원을 보라
(첫 네 행)
우리 '손 안에 무한을 쥐'게 만들었던 스티브 잡스가 사랑했던 윌리엄 블레이크는 시인겸 조각가, 판화가, 화가였습니다. 런던의 가난한 양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평생 읽은 책이라고는 성경뿐이었습니다. 학교는 10세까지밖에 다니지 못했고, 그의 시 작품은 난해하기로 유명했고, 무시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그의 회화 작품은 망상으로 치부되었습니다. 아마 스티브 잡스도 19세기에 살았다면 그랬겠지요. 그러나 그의 유산은 J.R.R. 톨킨과 필립 K.딕으로 이어져 거대한 우주론적 이야기 속 인간의 역할을 탐구하는 서사에 영감을 주었습니다.
작품을 살펴봅시다.
예수께서 상경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베다니 사람들이 잔치를 벌였고, 예수운동에 동조하던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둘러 앉았습니다. 예수님은 손님 중의 손님이지만, 또한 의미로 보면 주인공이자 호스트였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여태 발 씻는 관습까지도 지키지 못하고 식탁에 기대어 앉으셨습니다.
평소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말씀을 유심히 듣던 마리아는 아껴두던 향유를 열고 예수님의 발을 씻겼습니다. 종이 해야 할 일을 집주인이 합니다. 귀한 향유로 헌신합니다. 지고한 겸손과 헌신, 그리고 사랑의 순간입니다.
순간 둘러앉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표정을 살핍니다. 다른 동일 주제의 작품들과 달리 이 날 식탁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표정은 연민에 가깝습니다. 다가올 죽음을 아는 듯 슬픈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표정은 평온하고 수용적이며, 의연합니다. 죽음을 예비하고 발을 씻기는 마리아를 존중하는 마음이 비칩니다.
블레이크의 작품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남녀 성비와 귀천에 대한 다른 시각입니다. 성서에는 여성 제자들도 분명히 있었지만, 그간의 남성 작가들은 이를 회화에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모임이니 죄다 남성만 그렸습니다. 그 이상의 세계를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블레이크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에서 마르다와 집주인으로 상상할 수 있는 두 명의 여인을 추가로 그려 넣었습니다. 또한 작품의 정 중앙에 푸른 옷을 입은 나자로로 생각되는 인물을 그려 넣고 전체 인물들의 표정의 상당 비중을 차지하게 했습니다.
말씀과 이미지를 상상하며 함께 묵상합시다.
● 마리아는 노동자 1년치 임금정도 되는 귀한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내 삶에서 예수님께 드리는 가장 귀한 것은 무엇입니까?
● 마리아는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드렸습니다. 당시 여인의 머리카락은 가장 소중한 아름다움의 상징이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위해서 내려 놓을 수 있는 자존심은 무엇입니까?
●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행동이 자신의 장례를 위한 예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고난 주간을 앞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예비는 무엇입니까?
손 모아 기도합시다.
주님, 마리아의 사랑과 헌신을 기억합니다. 세상의 가치와 기준을 초월하여 온전히 주님만 섬기게 하소서. 주님 발 앞에 엎드려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헌신을 닮게 하소서.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며 오늘도 주의 향기를 세상에 전하게 하소서. 아멘.
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 이전글아침묵상- '깊은 물로 들어가야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 여호수아 3:8 25.04.02
- 다음글[백승철의 에피포도엽서] 시詩Poem 낮달 (외) 1편 by 김복숙 시인 25.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