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철의 에피포도엽서] 감사 (1) 성도의 존재론적인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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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1) 성도의 존재론적인 가치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여기서 “감사하는 자가 되라.”는 것은 노력하고 애쓰라는 단순한 요구가 아닙니다. 이미 성도는 감사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감사하는 자가되어야 합니다. 선택이 아니라 필연적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성경이 아무리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강조해도 현실에서 그 말씀이 적용이 안 되면 충돌을 일으킵니다. 감사할 조건이 없을 경우입니다.
힘들거나 사건사고가 일어났거나 몸이 아프거나 생업이 추락했거나 수입이 줄었거나 아이들이 속을 썩이거나 손해를 보거나 최악인 경우 솔직히 말해 감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감사할 수 없는 요소가 태산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인간의 힘과 정서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렇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일까요? 심각한 문제일수록 문제 속에 탈출구가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불가능이 해결되면 감사는 명료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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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위에 제시된 골로새서 3장 15절을 촘촘히 읽으십시오.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는 것은 “다스리게 하라. 지휘하게 하라.”뜻입니다. 게다가 그리스도의 평강을 위해 우리는 부름 받은 존재입니다. 어떤 사역을 감당하는 일보 다 앞서는 것이 평강입니다. 직분 보다 앞서는 것이 평강입니다. 무슨 일을 하느냐? 보다 선점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입니다. 평강이 없는 사역, 헌신, 봉사는 자신의 의로 쌓이는 부산물입니다.
그렇다면 내 속에 평강을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평강이 있어야 그 말씀이 나에게 효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확인해야 할 뿐 아니라 평강은 무엇입니까? 질문에 대한 답이 확실해야 합니다.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you. I do not give to you as the world gives. Do not let your hearts be troubled and do not be afraid.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평강은 헬라어로 ‘에이레네(Eirene)’입니다. 에이레네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이름입니다. 로마식은 ‘팍스(Pax)’입니다. 에이레네는 평화의 신으로 인간에게 번영, 발전, 성공을 베푸는 신입니다.
당시 예수님이 전하는 평강에 대한 메시지를 듣고 있던 청중들은 최소 평강(에이레네)에 대한 개념과 그 평강을 어떻게 누리는지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 청중을 향해 예수님은 평강의 주어를 바꾸었습니다. 혁명적인 복음입니다. 역사의 관점과 사고를 완전히 바꾸는 새로운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주는 평강은 세상이 주는 것(에이레네 여신이 주는 것)과 차별성을 두고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번영, 번성, 성공, 발전으로 얻는 것과 상이한 평강입니다. 세상에서 얻는 감사할 수 없는 조건으로 발생하는 근심과 두려움이 사라지게 하는 평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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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peace I give you.”
게다가 사람이 노력해서 평강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성도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그 평강을 주는 시점이 현재입니다. 과거도 아니며 미래에 주겠다는 약속도 아닙니다. 현재입니다. 신앙인에게는 현재 평강이 있습니다.
아직도 세상이 주는 관점, 시각, 생각, 판단대로 살고 있다면 오늘 말씀 앞에 진지하게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긴장해야 합니다. 내 속에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우선으로 그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 합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더욱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말씀을 객관적 시각으로 분석해 보면 예수님이 주는 평강이 없다면 구원받은 사람이 아닐지 모릅니다. 가혹한 표현일지 모르나 하나님의 사람이 아닐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크리스천에게 평강을 현재 주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아예 평강을 위해 부르셨다고 단언하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골 3:15).”
성도라면 반드시 예수님의 평강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물한 평강이 있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첫 번째 목적이 평강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그 평강으로 신앙인은 감사하는 존재입니다. 성도의 존재가치가 감사에 있습니다.
기죽지 마십시오. 실망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아직 끝이 아닙니다.

백승철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 ORU에서 박사학위, 캘리포니아 브레아(Brea)에 위치한 <사모하는교회 Epipodo Christian Church>의 담임목회자이며 교수,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 에피포도예술과문학(Epipodo Art & Literature)의 대표이다. 다양한 장르의 출판된 저서로 25권 외, 다수가 있다. 에피포도(Epipodo)는 헬라어로 “사랑하다. 사모하다. 그리워하다”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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