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용환의 예술묵상] 바를라흐의 "선한 사마리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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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사마리아인, 1919, 에른스트 바를라흐
뉴욕현대미술관, 워싱턴내서널갤러리(이상 미국) 등
독일 표현주의 조각가 에른스트 바를라흐(Ernst Barlach)의 목판화 작품 앞에 섰습니다.
판화 특유의 꿈틀거리는 질감이 인상적입니다. 배경을 대부분 남겨놓아 부유하는 듯한 짙은 어둠이 마치 활동사진처럼 잘 묘사가 됐습니다. 상처입지 않고 살기 힘든 세상을 어둠으로 잘 표현했습니다.
그 중심에 엉켜 있는 두 사람의 실루엣은 거친 어둠과 지친 침묵 속에서 우리에게 첫 번째 메시지를 전합니다. "둘은 하나다." 돕는 사람과 도움 받는 사람, 오늘 상처 입은 사람을 돕는, 어제 상처 입었던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엉겨 붙어 고통의 친밀감을 나누는 한 존재가 되어갑니다. 작가는 1차 대전에는 육군으로 참전했고, 전쟁을 찬양하던 평범한 독일인이었지만, 전쟁의 참상을 겪은 뒤, 나치에 의해 퇴폐작가로 낙인찍혔습니다.
상흔을 안고 살아가는 작가로서, 상처받은 자를 향한 깊은 연민이 작품마다 드러납니다. 다시 작품을 봅니다. 오랜 고통에 굽어버린 사마리아인의 등은 두 번째 메시지를 전합니다. "무겁다." 자신의 고통만 해도 힘에 겨워 제 한 몸 추스르기 힘든데, 선한 일까지 하기엔 버겁습니다. 그러나 말 없이 상처를 더듬고, 고통의 무게를 기꺼이 지탱하는 자비의 숨결로 들어올립니다. 노령의 상처투성이 벽돌공이 가뿐히, 그러나 요령껏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힘처럼 말입니다. 힘겨워도 한 걸음 한 걸음 회복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멀찍이서 흐릿한 눈으로 작품을 바라봅니다. 십자가에서 내린 예수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피에타의 사랑이 전해집니다. 한편, ‘돌아온 탕자’처럼 영광스럽게 아버지 품에 안기지도 못한, 수많은 ‘돌아오지도 못한 탕자’들을 찾아 헤메시는 늙으신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입니다.
세 번째 메시지는 "사랑"입니다. 다시 돌고 돌아, 그 어떤 모습이어도 상처 입은 영혼이라면 자녀 삼아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우리의 이웃, 우리의 스승, 우리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판화의 단순성은 묘하게 확장성을 품고 있습니다. 바를라흐의 투박한 조각칼이 목재를 깎아내듯,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부드럽게 빚어주시기를 소망합니다.
말씀과 이미지를 상상하며 함께 묵상합시다.
● 가장 최근에 누군가의 아픔을 외면하고 지나친 일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 나의 아픈 경험이 누군가를 돕는 계기가 된 적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손 모아 기도합시다.
주님, 저를 새롭게 하시어,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을 주소서. 작은 자비의
손길로 세상에 희망을 전하게 하소서. 아멘.
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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