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철의 에피포도엽서] 수필隨筆Essay 흰 쌀과자 by 수필가 한익승 Isaac Han > 묵상/기도 | KCMUSA

[백승철의 에피포도엽서] 수필隨筆Essay 흰 쌀과자 by 수필가 한익승 Isaac Han > 묵상/기도

본문 바로가기

묵상/기도

홈 > 목회 > 묵상/기도

[백승철의 에피포도엽서] 수필隨筆Essay 흰 쌀과자 by 수필가 한익승 Isaac Han

페이지 정보

본문

9f9fa1ec16a4bf9534ce4981763db931_1751385957_8804.jpg

제29회 에피포도신인문학상 수필隨筆Essay 수상작품 • 흰 쌀과자 by 수필가 한익승 Isaac Han (New Jersey) 



12월의 추운 겨울날, 우리는 딸아이의 돌사진을 찍으러 뉴욕 롱아일랜드로 갔다. 결혼식 야외촬영을 위해서 스튜디오를 방문했던게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연애하던 시절 아내와 함께 증명사진도 찍으로 갔으니 스튜디오 사장님과는 꽤 오랫동안 인연을 유지해 온 셈이다. 취업, 결혼 그리고 출산까지,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사진작가가 함께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느껴졌다.


예은이는 도착하기 전에 미리 낮잠도 자고 분유도 넉넉히 먹어서 컨디션은 최고였다. 하루종일 스튜디오 안에 갇혀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는 다르게 돌사진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거의 두 시간 만에 끝나버렸다. 심지어 예은이는 촬영을 마치고도 아쉬웠는지 오히려 사장님의 모습을 찾는 눈치였다.


아기들이 카메라를 든 낯선 사람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는 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나도 가기 전엔 무슨 재주로 아기들의 사진을 찍어주는건지 의구심이 들긴 했다. 혹시 소리 나는 장난감이나 인형 같은 걸 보여주면서 관심을 끌진 않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사장님의 영업기밀은 뜻밖에도 하얀색 쌀과자에 있었다. 보드라운 뻥튀기 같은 과자 한 알로 아기의 시선을 빼앗고 원하는 동작을 유도해 내는 것이었다. 흰 쌀과자는 예은이에게도 어김없이 그 신비스러운 힘을 발휘했다.


사장님은 한 컷씩 사진을 찍을 때마다 쌀과자를 창틀 위에, 사슴 인형 코 끝에, 그리고 나무계단 위에 살포시 올려 놓았다. 어느 정도 예은이가 긴장을 풀고 촬영에 적응하기 시작하자 사장님은 바로 과자통을 내게 건네주었다. 사장님이 “아빠 과자!”라고 신호를 주면 나는 뒤에서 재빨리 달려나와 쌀과자를 주문한 위치에 배치했다. 예은이가 과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서 한두개씩 집어 먹고 나면 사장님이 큰 소리로 말했다.


“다음 옷으로 갈아입을게요!”


흰색 드레스를 입은 예은이가 창문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 때였다. 내가 뚜껑이 열린지도 모르고 과자통을 흔들어대는 바람에 그만 쌀과자 한 움큼이 공기 중에 흩날려 버렸다. 여기저기 스튜디오 바닥에 떨어진 과자들을 벽에 기대에 서있던 예은이가 유심히 바라봤다. 사장님은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바로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돌사진 촬영은 타이밍이 중요하다. 사장님은 주로 아이가 웃고 있을 때나 정면을 바라보고 있을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지금처럼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도 사진 속에 담았다.


촬영하면서 예은이가 과자를 너무 많이 먹은거 같아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장님은 스튜디오에 사놓은 과자들은 대부분 바닥에 흘려버린다고 했다.


“오늘 사진 찍으면서 아마 10개 정도는 먹을 거에요.”


아니다. 예은이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20알 정도를 받아 먹어서 우리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요즘은 마치 푸드파이터처럼 이유식이며 분유를 먹는데 나는 밖에서도 그렇게 하면 몇 달 전에 체해서 응급실에 갔던 일이 반복될까 봐 노심초사했다. 아내는 과자의 크기가 작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어쨌든 스튜디오 사장님의 호의 덕분에 예은이는 난생처음 먹어보는 쌀과자를 2시간 동안 거의 25알이나 먹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아내는 예은이 바로 옆에서 촬영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사장님이 셔터를 누르는 동안 멀찍이 뒤에서 박수도 치고 아기상어 노래도 불러줬다. 그래서 아내는 못 봤지만 나는 사진작가의 위치에서 줄곧 우리 아이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우리 아이가 어쩜 그렇게 예뻐 보이던지 매 순간마다 가슴이 설레이고 뿌듯했다. 빨리 가족들에게 우리 아이 사진을 현상해서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

“여보 나 임신했어.“


새벽에 먼저 일어난 아내가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면서 말했다. 스튜디오를 방문하기 2달전의 일이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당황스러워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기뻐해야 하는건가, 감사해야 하는건가. 나 조차도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구별해내기 힘들었다. 첫째 딸인 예은이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지금보다 가족들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거라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내가 두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경제적으로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외면해왔던 수많은 고민들이 초조함과 함께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아내는 그 날 이후 임테기로 매일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확인했다. 첫 산부인과 진료에서는 태아의 크기가 작아서 심장박동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둡게 찍힌 초음파 사진 하나 달랑 집에 들고와서는 손가락으로 한 점을 가리키며 “얘가 기쁨이야”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니 비로서 임신 사실이 현실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떨리는 마음으로 다음 산부인과 진료를 기다렸다. 그런데 진료일이 다가올 무렵부터 아내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고 하혈을 하기 시작했다. 임신초기에는 얼마든지 있을수 있는 일이라며 아내를 안심시켜줬지만 아내는 생리할 때와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혹시 예은이랑 놀다가 배를 발로 차여서 아픈게 아닐까. 내가 집안일을 너무 안 도와줘서 무리를 했나. 다시 또 마음이 불안해졌다.


추수감사절 주일날엔 예은이가 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다. 며칠 동안 무리한 스케줄이 줄을 이었지만 우린 별 탈없이 바쁜 나날들을 견뎌냈다. 그래서 월요일이 되었을 때 우린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하루를 시작했다. 장모님이 예은이를 봐주시러 아침 일찍 우리 집에 오셨고, 우리는 아침밥을 먹고 각자의 일터로 향했다.


그런데 아침10시에 문득 아내가 문자했다.


“여보, 나 유산한거 같아.”


“뭐라고 여보? 괜찮아?”


“자꾸 아프고 하혈이 심해. 너무 무서워.”


갑자기 얼굴이 뜨거워졌다. 심장박동수가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나는 아내를 진정시킨 후 지금 당장 조퇴하고 산부인과 병원에 연락해보라고 했다. 하지만 담당 의사는 오늘 초음파 테크니션이 없어서 그냥 응급실에 가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어쩔수 없이 집근처에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에 가기로 했다.


나는 매니저에게 오후 스케줄을 비워달라고 부탁하고 재빨리 오피스에서 빠져나왔다. 아내는 몸이 아프고 힘든데 직장상사와 병원 스태프들이 오히려 축하해줘서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 장모님에게 알려드렸다. 놀랍게도 장모님마저 똑같은 반응을 보이셨다.


“경사났네. 너무 축하해. 안 그래도 내가 최근에 태몽을 꾼거 같았어. 너희들한테 좋은 일만 계속 생기는구나. 너희들 앞으로 행복하게 잘 살아!”


우리는 기뻐하시는 장모님과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도통 알리 없는 예은이를 뒤로 하고 바로 응급실로 향했다. 아내가 간호사를 따라 선별실에 들어갈때까지 나는 병원 로비 의자에 앉아 멍하게 TV에서 생중계 중이던 카타르 월드컵 경기를 보고 있었다. 멕시코가 상대편 팀을 압도하고 있었다. 멕시코 선수들의 코너킥 세트피스가 실패하자 캐스터가 알아들을수 없는 말로 탄식을 내질렀다. 옆에 앉아있던 인도 아저씨도 뭐라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5시간이 흘렀다.


응급실 밖으로 걸어나오는 아내가 보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떤 상황인지는 짐작할수 있었다. 아내는 차를 타자마자 소리없이 울기 시작했다. 어떻게 달래줘야 할지 막막했다. 그 후로 아내는 안정을 취하기 위해 1주일 동안 집에서 쉬었다. 나는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게 몰래 출근길 차 안에서 매일 혼자 평펑 울었다. 얼굴을 가려주는 흰색 마스크가 그때처럼 고마웠던 적이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서서히 분주한 일상으로 되돌아갈 준비를 했다.


***

스튜디오는 굉장히 넓고 쾌적했다. 다양한 콘셉트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공간이 여러 구획으로 나뉘어 있었고, 곳곳마다 아기자기한 소품과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특히 벽에는 많은 사진들이 걸려있었다. 대부분이 커다란 캔버스에 인쇄된 가족 사진들이었다. 아이들의 웃고 우는 사진들을 감상하면서 예은이의 어떤 모습이 사진 속에 담겨질지 상상해 보았다.


사장님은 사진을 찍는 내내 무거운 DSLR 카메라를 들고 스튜디오 바닥에 엎드리거나 드러누워서 최상의 앵글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사십여분이 지나자 사장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게 보였다. 스튜디어 직원분에 의하면 아기가 너무 울어서 촬영을 전혀 진행하지 못할 때도 많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우는 모습을 찍어야 한다며 울지 않는 아이의 볼을 일부러 꼬집어 울게 만든 어느 사진작가의 어처구니없는 만행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줬다. 어쨌든 예은이의 돌사진 촬영은 그렇게 아무런 해프닝 없이 마무리되었다. 기적 같은 2시간이었다.


​사장님이 카메라 스크린에 찍힌 예은이의 사진들을 다시 하나하나 보여주셨다. 나는 또 한번 우리 아이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가정에 스쳐간 슬픔과 고난의 시간들이 우리 아이의 얼굴에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하나님께 감사했다. 예은이는 차에 타더니 금세 잠이 들었고 집에 와서도 배고플 때까지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딸이 기특하고 고마웠다. 다음날 바로 흰 쌀과자를 사러 마트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작가 Profile]

제29회 에피포도신인문학상(수필) 수상 작가 한익승 수필가는 서울 출생. 뉴욕주 스토니부룩대학 생물학과 졸업. 뉴욕주 정골의대 졸업. 현재 뉴저지 거주. 클라라 마스 메디컬 센터 소속 가정의학과 전문의. 세계한인기독언론협회 제8회 신앙도서 독후감 공모전 우수상 수상. 미주한인기독문인협회 제37회 크리스찬 문학 신인상 수필 부문 당선.



9598e0012f480f6e0481d79fb27930f1_1700592122_7185.jpg
 

백승철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 ORU에서 박사학위, 캘리포니아 브레아(Brea)에 위치한 <사모하는교회 Epipodo Christian Church>의 담임목회자이며 교수,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 에피포도예술과문학(Epipodo Art & Literature)의 대표이다. 다양한 장르의 출판된 저서로 25권 외, 다수가 있다. 에피포도(Epipodo)는 헬라어로 “사랑하다. 사모하다. 그리워하다”의 뜻이다.


KCMUSA,680 Wilshire Pl. #401, Los Angeles,CA 90005
Tel. 213.365.9188 E-mail: kcmusa@kcmusa.org
Copyright ⓒ 2003-2020 KCMUSA.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