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철의 에피포도엽서] 시詩Poem 데워뒀어요 by 한원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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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표 시인
데워뒀어요
제30회 에피포도신인문학상 수상작품
냉장고를 열면
아버지가 끓여둔 한 냄비가 있다.
굳은 기름이 붉은 테를 두르고
그 아래로 두부가 가라앉아 있다.
가스불을 올렸다. 약불
혼자 밥 한 공기를 비웠다.
다 먹은 냄비는 가스렌지 위에 그대로.
열만 식히려 했다.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드시라고
이윽고 현관이 열렸다.
김치찌개 데워뒀어요.
아버지는 신발을 벗으며 말씀하셨다.
나는 그거 별로 안 좋아한다.
부엌의 형광등이
그 말 위에서 흔들렸다.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을
그렇게 오래 끓여 오신 손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나는 모른다.
아버지는 식탁에 앉아
김치찌개가 아닌 반찬으로
천천히 밥을 드신다.
멸치볶음. 깻잎. 김
식어가는 한 냄비 옆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시선의 여백
사실 신인문학상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회를 거듭하면서, 에피포도를 대표할 신인 작가의 발굴은 가슴 뛰는 일이다. 한원표에 시선이 가는 이유다. 한원표 시에는 평범한 일상의 삶, 사랑, 관계가 증폭되어 있다. 조금은 어설픈 방식의 시의 전개이지만 그것조차 신선하다. 시의 흐름에 마음을 쏟는 행위가 있다. 그래서 진실성은 시에서 가장 중요한 생명과 같다. 김치찌개 한 냄비를 매개로 아버지의 말없는 사랑과 희생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아버지가 정작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을 오랫동안 끓여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 평범한 일상은 깊은 감동으로 전환된다. 특히 절제된 표현과 침묵의 여운이 돋보이며, 부모의 사랑을 뒤늦게 깨닫는 자식의 마음을 진정성 있게 담아낸 수작이다. 시어의 문장 정리도 칭찬할 만하다. “부엌의 형광등이 / 그 말 위에서 흔들렸다”는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는 정서적 표출이다. “식어가는 한 냄비 옆에서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절제된 양식으로 독자가 침묵 속의 감정을 채우는 방식이다. 말하지 못하는 순간이 가장 많은 말을 담을 수 있는 공간이 되는 셈이다. 한원표는 기대해도 좋을 시인이 될 것이다.
한원표 시인
신인문학상 소식을 전하면서 수상소감과 약력을 기다리는 것은 늘 설렘이 있다. 좀더 작가를 알아가는 첫 걸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피포도 31년의 역사에 이렇게 짧은 약력은 처음이다. “일상과 비일상의 생각을 시적 언어로 담아내는 것에 관심을 두고 첫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첫걸음, 그것이 한원표 시인의 약력이다. 약력은 곧 삶의 지평이다. 그의 고백처럼 일상과 비일상의 생각을 시적 언어로 담아내는 새로운 삶의 시작을 응원할 수 밖에 없다.

백승철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 <Oral Roberts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 캘리포니아 부에나 파크 (Buena Park)에 위치한 <사모하는교회 Epipodo Christian Church>의 담임목회자이며 교수,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이다. 199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에피포도예술과문학(Epipodo Art & Literature)의 설립자이며 대표이다. 다양한 장르의 출판(영어, 한국어)된 저서로 31권 외, 다수가 있다. 에피포도(Epipodo)는 헬라어로 “사랑하다. 사모하다. 그리워하다”의 뜻이다. usae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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