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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용환의 예술묵상] 램브란트의 “세리와 바리새인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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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와 바리새인의 비유, c 1650-1655, 램브란트 스튜디오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워싱턴 D.C., U.S.)


램브란트 스튜디오의 한 작가는 뿌연 은총의 빛이 은은히 감도는 성전 한 구석, 그림자로 감추어진 한 작은 공간을 포착했습니다. 그 곳에 무릎꿇고 가슴을 치는 세리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갈대로 만든 펜을 가지고 인물의 윤곽선을 묘사하던 한 작가를 상상해 보십시오. 그 손은 떨렸을 것입니다. 세리가 떨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몸은 움추러든 채 조심스레 선을 이어갔을 것입니다. 세리가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세리는 성전에 들어온 것도 나간 것도 아닌 듯한 구석 자리에 위치합니다. 선 것도 앉은 것도 아닌 듯한 자세로 읇조립니다. '주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4(누가 8:13)' 마음은 원이로되, 쉽사리 혀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는 중간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동족의 고혈을 빨아먹는 사람, 부정한 돈을 만지는 손, 성전의 거룩한 돌바닥을 밟을 자격이 없는 더러운 발... 그는 자신이 유대와 로마의 중간에 서 있되, 중심에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빛과 어두움이 교차되는 곳에 어중간히 섭니다. 성전에서의 환대는 커녕, 다들 그가 무엇을, 어찌할런지 매의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압니다. 


기도는 하고 싶은데, 차마 고개를 들지도 못합니다. 부르짖는 곳을 향하지도 못하면서 눈만 슬쩍 치켜뜹니다. 진심은 전하고 싶으니까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할 수 없어 답답한 맨 가슴을 하릴없이 주먹으로 칩니다. 애통하는 기도, 너무 무거워 하늘로 오르기 어려울 듯한 기도는 중력을 벗어납니다. 땅의 진심과 하늘의 진리는 자력을 갖고 있습니다. 


세리 너머 점잖게 수염을 기른 사람은 하늘을 향한 사람입니다. 중심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환한 빛 가운데 앉은 사람입니다. 그는 고개를 들어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는 구별된 자, 바리새인입니다. 기도도 청산유수입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을 뿐더러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11절)' 손도 절박해 보이지 않으면서 기품있게 올려서 폼 잡고 기도했지만, 그의 기도는 같은 바리새들에게도 너무 뻔하게 들리는 메아리일 뿐입니다. '저는 일 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12절)' 모든 것을 제대로 했고,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당연한 자리에서 하나님이 당연히 들어주셔야 할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가 차지한 자리는 중심입니다. 합당한 자리입니다. 의롭다 여김을 받기 마땅한 자리입니다. 


반면, 세리는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알았습니다. 가장자리입니다. 중심을 추구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거기, 어둠에 가까운 자리, 구석에서 가슴을 칠 뿐입니다. 오늘 이 비유는 여기서 전복됩니다. 이 작품과 함께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합시다. '잘 들어라.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세리였다.(14절)' 세리가, 가장자리의 사람이, 부정한 사람이, 민족의 배신자가 예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 작품의 구도는 자연스럽지 않습니다. 첫 시선이 머물게 될 우측 하단 격자 교차점에는 바리새인이 먼저 잡힙니다. 가장 안정적이고 의도적인 중심에 바리새인을 배치했지만, 원근법을 적용해 멀리, 작게 묘사했습니다. 자연히 관람자의 시선은 부자연스럽지만 좌측 하단 격자 교차점에 있는 세리에게로 향합니다. 그저 음지에서 기도할 뿐인 세리가 선 가장자리가 중심이 되고, 바리새의 중심이 가장자리가 되어 위계가 뒤바뀌는 순간을 작가는 잘 묘사해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의도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기억합시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14절) 중심은 허상입니다. 높은 지위도 허상입니다. 이 작품은 가장자리에서 바라보는 중심을 잘 묘사해 냈습니다. 그 반대도 있을까요? 중심에서 가장자리를 보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바리새와 같이 '의로움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나는 저 사람과 다르다'라는 말 속에 감추인 '배제의 폭력'이 사슬이 되어 자신의 발목을 감쌀 것입니다. 역으로, 중심에 서기 위해 겸손을 가장하고, 가장자리에 서 봐야 건질 건 없습니다. 중심은 허상이기 때문입니다.  


세리는 감옥살이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이미 밀려난 사람, 부정한 죄인이기에 오직 구할 것은 '자비' 뿐,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생의 업적도 없고, 선행도 없어 삶으로 드리는 감사의 예물도 없습니다. 그저 서 있을 뿐입니다. 가장자리에,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그 자리에서 그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도 구할 것은 자비뿐입니다.


말씀과 이미지를 상상하며 함께 묵상합시다.


 나는 지금 어떤 '중심'을 붙잡고 있습니까?

나의 의로움, 나의 업적, 나의 정체성 중 무엇이 나를 '합당한 자리'에 있다고 믿게 만들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믿음은 누군가를 '저 사람과 다르다'며 밀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가장자리에서 가슴을 치며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부르짖은 적이 있습니까?

그 순간, 나는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졌습니까? 그리고 그때 경험한 자비가 지금 내 삶의 어느 가장자리를 향하고 있습니까?


손 모아 기도합시다. 


하나님, 저의 모든 중심은 허상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가장자리에 선 이들과 함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직 당신의 자비만을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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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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