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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용환의 예술묵상] 푸겔의 “나병환자 열 사람이 예수께 소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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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병환자 열 사람이 예수께 소리치다, 1920, 게프하르트 푸겔

뮌헨 프라이징 대교구 박물관 (프라이징, 독일)



푸겔은 누가복음 17장의 나병환자 열 사람이 손을 뻗어 간절히 예수께 소리치는 순간을 생생하게 작품에 담아냈습니다.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병자들의 애원이 들판의 공허를 찢는 그 순간, 공교롭게도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자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중이었습니다. 죽음을 향한 발걸음과 삶을 향한 애원이 엇갈리는 순간입니다. 


한편, 이러한 두 축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있습니다. 뒤따르던 제자들입니다.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선 예수와 나병환자들, 이 두 세계가 만나는 찰나를 목격합니다. 생사의 문제에는 일절 관심이 없이, 누가 더 높으냐에 관심 있던, 그러나 예수만이 희망임을 알고 묵묵히 따를 줄은 알았던 삼각 관계의 아이러니가 이 한 장면에 포착되었습니다. 


나병환자들은 온전히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믿음은 소리칠 줄 아는 믿음입니다. 아프면 아프다고, 도움이 필요하면 필요하다고 소리 내어 알렸을 때, 구원은 이루어집니다. 이들은 사실 율법에 따라 거리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사람들이 감염되지 않도록, 사회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도록, 스스로 “부정하다”고 외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를 바라보자 최소한의 안전장치, 아니 족쇄마저 벗어버립니다. 


유대 사회는 다양한 아픔을 품고 어울려서 혹은 떨어져서 살아갑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율법을 지키는 유대인이지만 가난해서, 그리고 역사적 이유로 정통 유대인 축에는 끼지 못하는 서러움을 품고 살아갑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혼혈이라는 이유로 아예 유대인이 될 자격조차 박탈당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적 고충은 병자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입니다. 특히 나병환자들은 곧 죄인입니다. ‘유대인이냐 사마리아인이냐’, 혹은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같은 차원 높은 고민에 비하면 질병의 문제는 죽고 사는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바라봅니다. 소리를 칩니다. 이 순간 만큼은 유대인-사마리아인을 떠나 간절함의 목소리가 합창이 되어 울립니다. ““예수 선생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17:13)


그들의 소리지름은 인간으로서 마지막 남은 존엄성을 끌어모은 부르짖음이자, 배제와 침묵을 강요당한 세월을 깨뜨리는 절규였습니다. 어둠 속에서 외줄기 빛을 향해 내민 떨리는 손길이었습니다. 육신의 질병은 관계의 단절로 이어지고, 더 아물기 힘든 마음의 상처로 귀결됩니다. 그 모든 결박을 풀어내고 터져나온 함성은 그리스도의 자비와 만납니다.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의 몸을 보여라.”(17:14)


‘이게 뭔 소린가?’ 어안이 벙벙한 나병환자 열 사람은 어디로 향했을까요? 반신반의하며 제사장들에게 달려갔을지도 모릅니다. 혹은 실망하며 숙소로 돌아갔을지도요. 그러나 주님의 자비는 약속처럼 이루어집니다. 최소한의 예수를 바라보고, 부르짖는 믿음이면 충분합니다. 병자들의 손발이 회복되기 시작합니다. 관계가 회복되니 육신이 회복됩니다. 신이 나서 제사장에게 자신들의 깨끗한 몸을 보이려 달려갑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잊은게 있습니다. 죄인이자 병자일 때는 모두 친구였지만, 병이 낫는 순간 다시 경계가 생깁니다. 유대인은 찾아갈 사제가 있지만, 사마리아인은 갈 데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자비로 죄와 질병에서 자유함을 얻었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도 아닌 회색의 정체성입니다. 


그러나 그 사마리아인은 놀랍게도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립니다. 말 그대로 유카리스트, 감사의 성찬입니다. 돌아오지 않은 아홉은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지만, 가슴이 시키는 찬양과 감사로부터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신앙은 터져나오는 감사와 찬양으로 다져집니다. 절망이 끝나는 순간 나타난 또 다른 절망 앞에서 하나님을 찾아 찬양하는 믿음은 분명 부르짖는 믿음 그 이상입니다.  


말씀과 이미지를 상상하며 함께 묵상합시다.


 나는 내 삶의 고통과 필요를 그리스도 앞에 솔직하게 소리 내어 말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율법과 체면, 사회적 거리라는 족쇄에 묶여 침묵하고 있습니까?

 치유를 받은 후 나는 어디로 향합니까? 제사장에게 달려가 율법적 의무를 다하는 아홉 명입니까, 아니면 다시 그리스도께 돌아와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한 사람입니까?


손 모아 기도합시다. 


주님, 제 안의 모든 부서진 부분을 당신 앞에 내어놓습니다. 소리 내어 부르짖을 용기를 주소서. 당신의 자비로 회복된 이 삶이 감사의 찬양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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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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