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용환의 예술묵상] 베로네세의 “가나의 혼인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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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의 혼인 잔치, 1563, 파올로 베로네세
루브르 박물관(파리, 프랑스)
이번 주일은 세계 성찬 주일입니다. 성찬을 그린 작품들에는 <최후의 성찬>도 있고, 엠마오 도상의 <부활 후 성찬>도 있지만, 예수께서 처음으로 신성을 드러내신 <가나 혼인 잔치> 자리를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각기 다른 풍경으로 예배 드리는 전 세계 교회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하나되는 복된 자리의 원형이라면,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그 날을 빼놓고 이야기 할 수 없으니까요. 게다가 연회자리를 가득 채운 132명의 의상을 보십시오. 그 화려한 베네치아학파 특유의 색감이라면 만국 교회들의 다채로움을 상징하고도 남지 않을까요?
작품에는 당대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영국의 수장들을 비롯하여 오스만 터키 술탄, 신성로마제국 황제 등 엄청난 사람들이 각기 의미를 품고 출현하지만, 그 중심에는 예수님과 어머니 마리아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실 가나 혼인잔치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신랑 신부 이름을 우리는 아직도 모릅니다.(참고로 신랑 신부는 테이블 왼쪽 끝에 있습니다.) 요한공동체에게 진짜 주인공은 예수님과 어머니니까요. 어머니 마리아의 빈 손을 유심히 보십시오. 잔을 들고 있는 듯하지만, 아무것도 없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졌음을 암시합니다. 예수님만 유난히 정면, 즉 관람자를 바라보십니다. 다음 기적의 주인공, 다음 변화 곧, 성화의 주체는 바로 ‘우리’라는 암시입니다.
작품 전경, 중앙 하단에는 음악가들이 배치돼 있어 작품에 역동성을 더해 줍니다. 흥미롭게도 작가 베로네세 본인이 하얀 옷을 입고 비올라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그 옆에 동네 작가들 다 출현시켜 줍니다. 틴토레토는 바이올린을, 티치아노는 첼로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지난 5백년 세월동안 비올라나 첼로는 많이 작아졌네요. 그 뒷면으로 야코포 바사노는 코르네토라는 클라리넷과 비슷한 악기를 연주합니다. 신의 아들이 이적을 행하는 현장이라면, 예술가들은 그 신성한 창조 현장을 찬미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협력자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재치입니다.
작품 중앙에서 시선을 옮겨 오른쪽, 왼쪽, 윗쪽을 바라보십시오. 참으로 분주합니다. 포도주를 따르는 하인 뒤에는 잔치 맡은 이가 좋은 술에 감격하고 있습니다. 밀가루를 나르도록 길을 터줍니다. 술이 떨어져 시들했던 잔치가 어느새 주님의 잔으로 활기를 찾았습니다. 주님께 초대받은 세계 각국의 교회들이 주님의 잔을 향해 둘러 서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 하는 감사의 고백과 더불어 북적하고 생기 가득한 잔치가 벌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이 작품은 베네치아의 베네딕토 수도원 벽면을 덮고 있던 가로 10미터 급 대형 작품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나폴레옹에게 약탈당해 베네치아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루브르로 옮겨진 작품입니다. 현재 박물관에서 가장 큰 작품인데, 역설적으로 오늘날 온 세계 사람들이 <모나리자> 다음으로 이 작품 앞에 서서 성찬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말씀과 이미지를 상상하며 함께 묵상합시다.
• 예수님의 시선을 마주 바라봅시다. 나는 어떤 변화를 갈망하고 있습니까?
• 성찬 앞에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와 같은 나의 감사 고백은 무엇입니까?
손 모아 기도합시다.
주님,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그 기적이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일어나게 하소서. 세계 각국의 교회들이 주님의 식탁에 둘러앉아,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로 찬양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는 구원의 축제를 경험하게 하소서. 아멘.
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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