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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용환의 예술묵상] 밀레이의 “불의한 재판관과 끈질긴 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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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재판관과 끈질긴 과부, 1864, 존 에버렛 밀레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뉴욕, New York)



작품 속으로 들어섭니다. 먼저 숨막힐 듯한 정적이 느껴집니다. 대리석 기둥이 만든 그늘 아래,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법정. 그곳에서 두 영혼이 마주합니다. 한 사람은 높은 곳에, 다른 한 사람은 낮은 곳에. 한 사람은 권력의 화려한 옷을 걸쳤고, 다른 한 사람은 궁핍의 낡은 천을 걸쳤습니다.


이 목판화는 누가복음 18장의 이야기를 옮긴 것입니다. 불의한 재판관과 끈질긴 과부. 하지만 이건 단순한 성서 삽화가 아닙니다. 여기엔 인간 존재의 가장 오래된 대립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무관심과 절박함, 포만과 결핍, 그리고 냉소와 호소. 재판관의 눈은 어딘가 먼 곳을 향해 있고, 과부의 눈은 오직 한 곳, 정의만을 봅니다. 두 사람을 가르는 건 물리적 거리가 아닌,  영혼의 온도 차이입니다. 


재판관의 화려한 의상을 봅니다. 거들먹거리는 자세를 봅니다. 그 속에서 세속 권력의 허상이 드러납니다. 그는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대 계명의 반대편에서 버티고 있는 존재입니다. 눈빛은 몽상중이며, 불편한 듯 펼쳐든 손바닥은 경계를 가르고 있습니다.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은 건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감각입니다.


그러나 과부는 물러서지 않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과부는 가장 약한 존재였습니다. 남편도 없고, 아들도 없고, 보호자도 없는 그녀에게 남은 건 오직 정의에 대한 갈망뿐이었습니다. 그녀는 매일 재판관을 찾아갔습니다. 거절당해도, 무시당해도, 다시 왔습니다. 그녀의 끈질김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정의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는 신념이었습니다.


예수는 이 비유로 기도에 대해 가르쳤습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끈질긴 요청에 결국 굴복했다면, 하물며 자녀를 사랑하는 하나님이 끈질기게 부르짖는 기도를 외면하시겠습니까. 과부의 끈질김 속에는 정의가 승리할 거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끈질김”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기도에 대한 가르침의 한 “정답”으로, 더 나아가 “비유”로 설명하셨을까요? 기도의 최대 방해꾼이 바로 “낙담”이기 때문입니다. 응답이 지연될 때, 하늘이 침묵할 때, 우리는 쉽게 낙심합니다. 그러나 진짜 기도는 즉각적인 결과를 얻기 위한 기술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신뢰하며 끝까지 나아가는 믿음의 여정임을 오늘 이 작품과 성서의 비유는 말하고 있습니다.


밀레이의 화면은 어둡습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과부의 형상은 빛납니다. 그녀는 혼자가 아닙니다. 역사는 이런 사람들로 채워져 왔습니다. 불의에 맞서 끝까지 싸운 사람들, 침묵하지 않고 외친 사람들. 그들의 목소리가 모여 세상을 조금씩 바꿔왔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점점 불의한 재판관이 늘어만 갑니다. 너무 거대한 권력 앞에 무기력해지고, 낙담의 바이러스로 온통 주저앉아버린 세상입니다. 억울한 일 없는 세상, 눈물 없는 세상 곧 우리 주 예수께서 오실 세상에서 오롯이 빛날 것은 바로 이 과부의 믿음, 끈질긴 기도의 믿음입니다. 


말씀과 이미지를 상상하며 함께 묵상합시다.


 나는 어느 편입니까? 부당함 앞에서 과부처럼 끈질기게 부르짖는 쪽입니까? 아니면 재판관처럼 무감각하게 봐도 못본척 하는 쪽입니까? 

 어둠 속에서 더 선명한 빛을 발견한 경험이 있습니까? 인생의 어두운 골짜기에서 한 줄기 빛 같은 주의 손길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손 모아 기도합시다. 


주님, 주님, 불의한 재판관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과부처럼, 우리에게 정의를 향한 끈질긴 믿음과 포기하지 않는 기도의 용기를 허락하여 주소서.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그 자리, 침묵 속에서도 또렷한 그 목소리로 당신의 정의를 신뢰하며 끝까지 나아가게 하시고, 우리의 기도가 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는 작은 빛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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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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