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용환의 예술묵상] 보니파치오 데 피타티의 “부자와 나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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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나사로, 1540s, 보니파치오 데 피타티
아카데미아 미술관(베니스, 이탈리아)
세로 2미터, 가로 4미터가 훌쩍 넘는 대형 작품 앞에 서 봅니다. 예수께서 누가공동체에게 들려주신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가 생생하게 되살아납니다. 먼저 작품을 세로로 가로지르는 대리석 기둥이 돋보입니다. 화려한 기둥이 저리 많으니, 건축물은 얼마나 웅장할까요? 마치 왕실을 들여다 보는 듯, 수많은 하인들이 각자의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고, 귀족들은 언뜻 화려해 보이지만, 건물 크기만큼이나 공허한 영적 빈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평화롭고 호화로운 그들의 일상을 빈곤하게 만들어 주는 작품의 주인공이 우측에 출현합니다. 헐벗고 상처 투성이인 나사로가 부자들에게 뭔가를 간절히 요청하는 듯 보입니다. 나사로의 몸을 핥고 있는 개들은 오히려 자비롭습니다. (실제 고대 사회에서 상처를 낫게 하는 의술로 동물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호화로운 의복을 무심한 듯 갖춰 입고 악기를 중심으로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부자들의 표정에는 사람을 사람으로 생각치 않는 무관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멀리 나사로까지 갈 것도 없이, 유색인종 한 사람이 악보를 잡아 든 채, 살아 있는 보면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귀족이 아닌 이들의 고통은 그들에게 무의미 그 자체입니다.
강력한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전경에서 잠시 시선을 옮겨 배경을 살펴봅시다. 르네상스 특유의 깊은 공간감이 돋보입니다. 멀찍이 아스라히 보이는 건물과 풍경은 이 세상의 부귀 영화가 얼마나 덧없는지에 대해 속삭입니다. 우측 상단의 붉은 광채에는 "동시적 서사(Simultaneous Narrative)" 기법이 적용되었습니다. 한 작품 안에 두 개 이상의 장면을 동시에 배치하거나, 현재 상황 속에 미래의 한 장면을 암시적으로 삽입하는 회화 기법입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뒤바뀐 운명을 보여주는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암시하기에 적절한 기법입니다. 붉은 광채는 누가 16:24의 “저는 이 불꽃 속에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는 부자의 아우성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현세를 살아가는 이들은 쉽게 예측하지 못하는 세계를 은근히 한쪽 구석에 담아낸 것입니다.
다시 전경을 돌아봅니다. 배경에는 지옥불을 연상시키는 암시가 숨겨졌다면, 전경에는 처음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던 기둥이 있습니다. 세속의 수평적 쾌락과 대조를 이루는 하늘과 땅을 잇는 수직선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암시합니다. 상처를 핥는 개들의 행위는 인간의 무관심함과 상반되는 대자연의 자비를 상징합니다. 작가는 16세기 베네치아 귀족들의 부도적을 훈계하고 있습니다. 재물을 낭비하고 공적 부조에 무관심한 현실, 5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당시 귀족들보다 더 풍성하고 깊은 문화를 향유하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훨씬 즐거운 시간을 누리지만,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여전히 뒷전인가요? “풍요로운 삶 속에서의 영혼의 가난함”은 5백년 전으로 족하고, 이 작품을 감상하는 것만으로 족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은 이제 “내 눈 앞에 나사로를 발견할 안목을 가졌는가?”입니다.
말씀과 이미지를 상상하며 함께 묵상합시다.
• 나는 내 삶의 연회 테이블에 누구를 초대하고 있습니까?
• 내 눈 앞의 나사로는 누구입니까?
손 모아 기도합시다.
하나님, 우리에게 축복으로 내리신 풍요로움이 우리의 눈을 멀게 하는 도구가 되지 않게 하소서. 매일의 선택 속에서 나사로를 찾게 하시고, 주께 받은 대로, 그 사랑을 나누게 하소서. 아멘.
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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