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용환의 예술묵상] 조토의 “그리스도의 생애 No.22: 승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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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38 Scenes from the Life of Christ: 22. The Ascension
승천, 1304-1306, 조토 디 본도네
스크로베니 경당 (파도바, 이탈리아)
파도바의 스크로베니 경당 벽면에 그려진 그리스도의 생애 시리즈 22번째 작품, 승천입니다. 입체감과 원근법이 발명되기 전의 작품이지만, 성서 그대로 재현해 낸 신앙 고백, 그 자체로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중앙 상단에서 하늘로 솟구쳐 오르고 계십니다. 보통 인물이 중력 방향으로 떨어질 때 손을 들지만, 예수님은 하늘로 오르시면서 손을 들고 계시네요. 단순히 외력에 의지해서 오르고 계시는 게 아니라, 최후의 순간까지 힘을 다해 축복해 주고 계시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을 바라봤던 누가 공동체는 “두 손을 들어 죽복해 주셨다.” “축복 하시면서 하늘로 올라 가셨다”(누가 24:50)고 기록했습니다. 조토는 ‘마지막 순간에 그리스도의 몸짓은 무엇이었나’를 강렬히 고민하고 성서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주님의 마지막 행동은 <축복>이었습니다.
좌측과 우측에는 천사들이 증인이 되어줍니다. 모세나 엘리야 같은 신앙의 선조들도 포함되어 있다고도 합니다. 작가가 말하기 전에는 보고 싶은 대로 보는 법입니다. 제 시선이 보고 싶은 내용은 좌측 천사들에게 있습니다. 예수님 올라가시는 것 보기도 바쁜데, 수다가 많은 아이들처럼 서로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하느라 바쁩니다. 지금 우리가 보기엔 그저 귀여울 뿐이지만, 이 시도가 바로 조토가 르네상스의 문을 열게 된 계기가 됩니다.
중세 미술은 인간의 감정을 극단적으로 제어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엄중한 승천 시국에 수다를 떨고 있는 아이 같은 천사들에게 시선이 뺏깁니다. 읽기 못하는 이들에게 보여주는 성서 용도였던 성화들에 예외란 있어선 안됐습니다. 질문이라도 생겼다간 신심이 흐트러지기 마련입니다. 그런 중세의 감옥을 조토는 성서를 뒷배로 하여 탈출해 냈고, 르네상스의 문을 열어 결국 서양미술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천사나 인간의 감정을 드러냈다고 해서 신심이 약해질 정도면, 아마도 애초에 신심 자체가 흐물흐물 했었던 거겠지요.
지금까지 하늘의 풍경이었고, 이제 땅으로 향해 봅시다. 하단에는 열두 제자와 어머니 마리아가 등장합니다. 제자의 수는 열 하나, 유다의 빈 자리가 아직 맛디아로 채워지지 않았던 타이밍을 잘 잡아냈습니다. 가운데 두 천사는 "너희는 갈릴리 사람들이 아니냐, 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느냐"는 사도행전의 천사들의 말씀(사도 1:11)을 시각화한 것입니다.
이 작품을 구석 구석 묵상하면서 어떤 감정이 올라오시나요? 우리는 한의 민족이라 그런지, 슬픔 정서에 익숙합니다. 성찬을 나눌 때에도 십자가의 슬픔과 부활의 기쁨이 짝이 되어주지 못합니다. 승천을 바라볼 때에도 상실이라는 슬픔과 예배공동체의 결성이라는 기쁨이 연합하지 못합니다. 성서는 말합니다. “그들은 엎드려 예수께 경배하고 기쁨에 넘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날마다 성전에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지냈다.”(누가 24:52-53).
승천의 결말은 결국 기쁨입니다. 제자들의 표정을 다시 봅시다. 감격과 결의가 스쳐 지나갑니다. 부모를 잃은 듯한 통곡과 무너짐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50일 사이에 십자가와 죽음, 부활과 승천을 겪은 제자들의 표정에는 “다음엔 어떤 일이 벌어질까?”하는 기대와 “주님께서 주시기로 한 것이 무엇일까”하는 호기심이 깃들어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기로 한 것, 그것은 보혜사 성령이었음을 우리는 압니다. 다음에 벌어질 일, 그것은 교회의 탄생임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혹자들은 부재와 탄식에 머물러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 승천의 증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의 부재처럼 느끼는 우리의 삶의 자리, 그 자리에 이미 기쁨의 성령께서 임재하고 계십니다. 승천은 끝이 아닌, 성령 강림의 서곡입니다.
묵상을 돕는 질문
• 요즘 하나님이 멀게 느껴지거나, 기도가 공허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으신가요? 그 자리를 "하나님이 없는 곳"이 아니라, "성령께서 오시기 위해 비워진 곳"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어떨 것 같으신가요?
• 승천을 바라본 제자들은 울지 않고, 기쁨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지금 내 신앙을 슬픔으로 붙들고 있나요, 기쁨으로 걸어가고 있나요?
손 모아 기도합시다.
주님, 당신이 떠나신 자리에 성령을 보내주셨듯, 오늘 제 삶의 빈 자리도 기쁨으로 채워주소서. 상실 앞에서도 찬미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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