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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용환의 예술묵상] 터너의 “선한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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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od Shepherd

선한 목자, 1902-1903, 헨리 오사와 타너

짐머리 미술관 (Zimmerli Art Museum in Rutgers University, New Brunswick, NJ)



미국의 인종차별을 피해 파리로 건너간 작가 헨리 오사와 타너의 인생 여정은 떠남과 새 삶의 반복이었습니다. 기회만 되면 돌아오고자 필라델피아로 돌아오곤 했지만, 뿌리 깊은 미국, 특별히 예술계의 인종차별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유색인이 예술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당시 미국인들은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대학에서 가르칠 정도의 실력을 갖춘 작가가 전시전을 열었지만 한 작품도 팔리지 않아, 후원자 한 사람이 모든 작품을 사들여 파리 유학 비용을 마련해 주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 사라 타너 또한 황급히 떠나고 정착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지하 철도>, 즉 노예 해방을 위한 비밀 네트워크 Underground Railroad를 통해 동부에 정착했고, 아프리칸 감리교회 목사인 남편을 만나 타너를 낳았습니다. 어머니로부터 자신에게까지 이어진 더 나은 삶을 향한 떠남은 언제나 길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위험하고 어두운 여정이 이어질 지라도, 어린 양떼를 이끌어주시는 분은 주님이시라는 믿음으로 작가는 그 험난한 차별과 유랑의 시절을 이겨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께서는 한 마리 양이라도 홀로 두지 않으시고, 언제나 앞장서 가심으로 인도하시는 목자셨습니다. 실제 작가의 아들 제시는 “아버지가 가장 즐겨 그린 주제는 <선한 목자>”라고 인터뷰했습니다. 


오늘 소개한 작품은 그 시리즈 중 초기작에 해당됩니다. 파리에 머물지 않고 성지를 돌아다니며 그 풍경에 예수를 덧입히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그 중 대표작이 바로 선한 목자입니다. 주제는 같아도 신앙의 성숙함과 작가로서의 원숙함이 더해져 다른 장소, 다른 빛, 다른 풍경 속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을 다섯 차례 이상 붓으로 고백해 냈습니다. 


작품을 살펴봅시다. 달빛이 은근한 푸른 밤입니다. 시작부터 전복적입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선한 목자 상은 이렇지 않습니다. 20세기에 유행했던 위너 샐먼의 <선한 목자>는 광채가 그리스도와 양들 위에 축복처럼 내려오고, 푸른 풀밭, 맑은 시내, 고즈넉한 산세로 여기가 천국이 아닌가 생각할만한 이미지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목자처럼 안 생겼고, 새하얀 세마포로 거룩함을 표현했으며, 양떼는 실제보다 너무 하얀 모습입니다. 전도지나 액자를 통해 상당히 익숙했던 예수님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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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타너의 선한 목자는 어둡기 짝이 없습니다. 얼핏 보이는 달빛조차 부끄러워 겨우 고개를 내밀고, 선한 목자와 양떼를 향해 실루엣만 허락한 채 밤안개 속으로 사라집니다. 작달막한 올리브 나무들은 우리 고향 산천의 비뚤비뚤한 소나무 형세라 더 반갑습니다. 그 나무 두 그루 사이에 서 있는 존재는 제목이 없으면 나그네인지 목자인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다만 존재할 뿐입니다. 마치 우리가 알아채든 못채든 우리 곁에서 우리를 이끄시는 예수님이 그러하신 것처럼. 


작품을 두 번, 세 번 다시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수줍은 달빛에도 익숙해집니다. 내 상상 속 밝고, 생동감 넘치며, 아름다운 <선한 목자> 상이 조금 누그러집니다. 작품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호흡조차 조심스레 가다듬게 만듭니다. 그 묵직함의 근원은 침묵입니다. 총 천연색이 아니어도, 아름다운 가지각색의 소리들이 아니어도 양들은 목자의 모습과 목소리를 압니다. 이끌림은 본능입니다. 그러나 정확한 감각입니다. 


어둠 속을 걸어본 적 있는 사람, 작가 타너의 생존 신고이자 삶의 고백이 이 작품에 녹아 있습니다. 푸른 초장 맑은 시냇물가로 인도하시는 분도 목자이시지만, 도둑과 맹수가 빈틈을 노리는 적막한 밤길에 지팡이로 지키시는 분도 선한 목자이심을 작품은 분명히 환기시켜주고 있습니다. 밤은 여전히 깊어가지만, 목자되신 그리스도 또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어둠 속 실루엣 뿐이고, 저벅거리는 발걸음 소리뿐이지만, 양들은 분명히 압니다. 이 어둠 속 우리를 이끄시는 분이 누구신지.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케 하시는 분이 누구신지.


묵상을 돕는 질문

 

• 타너는 밝고 아름다운 목자의 이미지 대신, 알아보기조차 어려운 어둠 속 실루엣을 선택했습니다. 내가 지금껏 품어온 하나님의 이미지는 어떤 모습인가요? 혹시 내가 원하는 하나님의 모습과, 내가 실제로 경험해온 하나님의 모습 사이에 간격이 있다면, 그 간격 안에서 나는 무엇을 배웠나요?

• 타너의 어머니는 지하 철도를 통해 어둠 속을 걸었고, 타너는 차별의 땅을 떠나 낯선 파리로 건너갔습니다. 나에게도 두렵고 낯선 길을 나서야 했던 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여정을 돌아볼 때,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지만 앞서 걷고 계셨던 목자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나요?


손 모아 기도합시다.


어두운 밤길에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시는 주님, 제가 주님의 존재를 느끼지 못할 때에도 주님은 이미 제 앞에 서 계셨음을 고백합니다. 제 눈이 밝아져 어둠 속 실루엣만으로도 주님을 알아보는 양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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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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