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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용환의 예술묵상] 스테븐스의 “그리스도와 삭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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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삭개오, 1913, 닐스 라슨 스테븐스

란데르스 미술관(란데르스, 덴마크)


캔버스 앞에 섰을 때, 먼저 느껴지는 것은 ‘침묵’입니다. 바람 소리, 나뭇잎 소리, 매미 소리는 한창인데, 갑자기 일행들은 말을 잃었습니다. 그 자리에 멈추어 섰습니다. 작가 스테븐스가 누가복음 19장의 삭개오 이야기 속에서 포착한 것은 ‘말’이 아니라 ‘시선’이었습니다. 


<말의 차원>에서 일제히 정적을 이룬것과는 달리 <시선의 차원>에서 일행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 응시하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와 삭개오는 운명적 마주침으로 얼어붙은듯, 서로 마주보며 만남을 시작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 대부분은 스승을 따라 삭개오를 바라봅니다. 그러나 사람 마음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법입니다. 의아한 표정으로 예수를 바라보는 이들도 꽤 있고, 속으로 딴 마음을 품은 듯, 혹은 “이건 아닌데?” 하는 속마음을 옲조리듯 고개를 숙이거나 뒤를 바라보는 시선들도 보입니다. 이곳 저곳에서 눈덩이처럼 불어나 함께 진군하는 추종자들의 지향은 예루살렘이 있는 남향입니다. 행진하는 발은 모두 한 곳을 향하고 있지만, 시선은 제각기, 마음 속은 더욱 제각기일 터입니다. 

 

그 중심에 붉은 옷을 입으신 그리스도께서 서 계십니다. 붉지만 화려하진 않습니다. 군중들과 이질감이 없는, 톤 다운된 붉음입니다. 금빛 후광은 철지난 유행처럼 어울리지 않습니다. 후광이 없다고 그리스도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서 일렁거리는 듯한 군중의 중심에 무게추로써 서 계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추종자들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얻어내지 못한 나무 위에 올라간 키 작은 사나이를 바라보십니다. 존재 자체로,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시는 눈빛에 서늘한 친밀함을 담아 말씀하십니다.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초대장은 보내지도 못했지만, 눈빛만으로도 주님을 영접하고자 하는 마음은 전해집니다. 간절함을 담아 나무 위에 올라갔으니 말못할 절박함을 품고 있는 것은 두말할 것 없습니다. 


삭개오는 나무 위에 있습니다. 그동안 많은 작가들이 키 작은 삭개오를 더욱 작게 그렸습니다. 대개 우스꽝스럽게 그렸습니다. 멸시당해 마땅한 인물이자, 민족의 배신자들의 수장, 세리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테븐스는 그 방식은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더 악하고 추한 죄인을 용서해 주셔야 그리스도께서 높임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체의 불리함이 오히려 주께 더 가까이 하도록 올라가게 하고, 몸을 더 기울이게 한 삭개오의 마음을 더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간절히 주께 향한 존재를 주목하셨을 뿐입니다. 그 존재의 삶의 이력이 어떠하든지 간에 말입니다.


군중은 희미합니다. 작가는 그들을 일부러 명확히 그리지 않았습니다. 이 작품에서 존재와 존재의 만남은 그리스도와 삭개오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군중들의 수군거림과 흩날려진 시선은 마치 블러처리된 배경처럼 흐려져 있습니다. 구원은 다수결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인격적인 만남이면 충분합니다. 주께서 말 걸어주시고, 초대에 응해 주실 수 있도록 충분히 기울이는 이에게 기회가 찾아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회개한 삭개오를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집은 구원을 얻었다” 인생을 뒤바꿔 놓은 만남, 그리고 짧은 대화와 고백과 구원의 메시지. 이 모든 것이 이 작품이 첫 인사로 건넨 ‘침묵’의 행간에 스며들어 있음을, 다시 작품을 바라보며 묵상해 봅니다. 


말씀과 이미지를 상상하며 함께 묵상합시다.


 당신을 주님께로 더 가까이 오르게 하는 '나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약점일 수도, 간절함일 수도, 혹은 절박함일 수도 있습니다.

 군중 속에서 당신의 시선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예루살렘을 향한 발걸음과 당신 마음 속 시선의 방향은 같은 곳을 향하고 있습니까?


손 모아 기도합시다. 


주님, 저의 작음과 연약함이 오히려 당신께 더 가까이 오르게 하는 나무가 되게 하소서. 군중의 수군거림이 아니라, 당신의 눈빛 하나만으로 제 존재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그 만남 속에서, 오늘 저의 집에도 구원이 임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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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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