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철의 에피포도엽서] 나비가치 입뿐 딸 by 임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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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가치 입뿐 딸 by 임지영
나비가치 입뿐 딸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어느 여름, 갑작스러운 출장으로 한국을 방문해야 했다. 자가격리 기간을 고려해 아이들과 함께 한 달 남짓 머물기로 했다. 공항을 빠져나와 마주한 고국의 공기는 뜨겁고 묵직했지만, 그 익숙함만으로도 긴장이 스르르 풀렸다. 공항 리무진은 막힘없이 달렸고, 차창 밖 평범한 풍경들은 오히려 더 깊은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친정 식구들은 격리 기간 동안 우리를 위해 집을 비워주었다. 여동생이 알려준 곳에서 열쇠를 찾아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정적 속에서도 어머니의 손길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격리 해제 후, 우리는 치킨 파티를 열었다. 무더운 여름밤, 두런두런 이어지는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눅눅한 공기를 타고 골목 끝까지 번져갔다.
이른 새벽, 물을 마시러 나왔다가 거실 마루에 웅크린 채 잠든 아버지를 보았다. 어린 시절, 온 가족이 한 방에 모여 잠들던 기억이 떠올랐다. 달빛 아래, 무릎을 꿇고 허리를 구부린 채 잠든 모습은 세상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진 사람처럼 보였다. “아빠, 누워서 자요.” 조심스레 말을 건네자 아버지는 긴 한숨을 내쉬며 베개에 얼굴을 묻으셨다. 그 모습은 이후에도 몇 번 더 눈에 들어왔지만, 이유를 묻지 못한 채 마음 한켠에 남았다.
강물이 바위를 만나도 돌아가며 흘러가듯,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이해되는 것들이 있다.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자란 아버지. 추운 겨울과 쓸쓸한 명절, 그리고 이른 독립. 말로 다 하지 못할 시간을 견디며 살아온 삶의 무게를,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야 조금이나마 짐작하게 되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약수터에 가시려는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힘들게 뭐하러 그러냐.” 하시면서도 입가에는 웃음이 번졌다. 낡은 트럭은 시골길을 덜컹거리며 달렸고, 차창 안으로 풀내음과 흙냄새가 짙게 배어왔다. 약수터 옆 작은 가게에서 파는 뜨끈한 손두부는 잊지 못할 그리운 고향의 맛이었다. 물을 가득 채운 생수통을 나르던 길, 아버지의 걸음이 잠시 흔들렸다. 어디 불편하시냐고 여쭙자, “전쟁 끝나고 미군 트럭 타고 가다가 전복됐다고 했지. 그때 다친 거야.” 덤덤한 한마디였다. 그 짧은 말 한마디가 품은 세월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얼굴을 피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 채 조용히 눈물을 삼켰다.
그것이 당신과의 마지막 데이트였다.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깨달았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했지만, 그 삶을 제대로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그로부터 2년 뒤,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남동생의 결혼식과 어머니의 칠순을 맞아 부모님과 여동생이 미국을 방문한 것이다. 독립기념일(Independence Day) 연휴를 맞아 빅베어 마운틴(Big Bear Mountain)으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 온 가족이 함께 한 첫 번째 여행이었다. 바비큐 파티와 보드게임, 배드민턴과 제트스키를 즐겼다. 삼나무와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산장, 청명한 공기와 숲의 고요함 속에서 매일 아침 “참 좋다……” 하시던 아버지. 저녁이면 발코니에 앉아 땅거미 지는 하늘을 오래도록 바라보셨다. 그 한마디와 뒷모습에는 긴 삶의 쉼표가 담겨 있었다.
어느 날 새벽,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 담벽 앞에 흐드러지게 핀 부겐빌레아 꽃 아래서 사진을 찍고 있는 아버지를 보았다. 아침 해의 강인한 햇살이 진분홍 꽃잎 위로 싱그럽게 쏟아지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팔짱을 끼고 산책길에 나섰다. 손차양을 만들어 아침 햇살을 가린 채 호수 주위를 천천히 거닐며 나눈 이야기들. 아버지는 내가 돌아가신 할머니를 닮았다고 했다. 얼굴이 갸름하고 키가 커서 동네 사람들이 ‘꺽다리’라 불렀다는 이야기를 아버지의 외삼촌으로부터 들었다고. 그 순간 아버지의 눈동자에서 내가 본 것은 다정함만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할머니와 나의 모습이 어우러진 깊고 진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배우지 못한 게 늘 한이었다는 한탄 섞인 말에 나는 마음 깊이 간직해 온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아버지는 겸손하고 지혜로우며 누구보다 멋진 분이라고. 지식보다 더 소중한 삶의 지혜를 몸소 보여주신 분이라고. 내 고백이 닿은 것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버지의 걸음은 이전보다 더 힘차고 당당해 보였다. 비스듬하던 태양이 푸른 하늘 한가운데로 올라서고 있었다.
귀국을 앞두고 내 오랜 소원이던 아버지의 세례식이 있었다. 고아원 시절 처음 알게 된 하나님, 그분께 드리는 감사와 헌신의 고백은 아버지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었다. 세례단 앞에 서 계신 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새 생명을 얻은 아이처럼 빛났다.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당신의 인생은 결국 은혜로 완성되고 있었다.
함께한 시간들을 뒤로하고 나는 일상의 리듬으로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진초록 이파리 위에 내려앉은 호랑나비 사진과 함께.
“나비가치 입뿐 큰딸.”
맞춤법이 틀렸는지 오타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사랑한다는 말이었다. 이제 아버지의 이야기는 내 마음속에서 나비가 되어 날아오른다. 그 날갯짓은 내 아이들에게로 이어져 또 다른 이야기꽃을 피워낼 것이다. 아버지의 삶이 그랬듯, 우리도 강물처럼 흘러 서로에게 닿을 것이다.
***
임지영 (Lydia J Lim) 시인은 대구교육대학교 졸업. 대구매호초등학교 재직 중 2008년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 제9회 세계한인기독언론협회 주최 신앙도서 독후감 수상을 계기로 본격적인 창작 활동 시작. 제28회 에피포도신인문학상(시)을 수상하며 등단. 작품을 통해 신앙과 치유, 공존, 그리움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현재 JU Genesis Lab 공동창립자 겸 CFO. 얼바인 주교회 북클럽 팀장.

백승철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 ORU에서 박사학위, 캘리포니아 브레아(Brea)에 위치한 <사모하는교회 Epipodo Christian Church>의 담임목회자이며 교수,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 에피포도예술과문학(Epipodo Art & Literature)의 대표이다. 다양한 장르의 출판된 저서로 25권 외, 다수가 있다. 에피포도(Epipodo)는 헬라어로 “사랑하다. 사모하다. 그리워하다”의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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