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용환의 예술묵상] 블로흐의 “산상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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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 수훈, 1877, 칼 하인리히 블로흐
프레데릭스보르 성 국립역사박물관 (힐레뢰드, 덴마크)
19세기 덴마크 작가, 블로흐는 렘브란트의 빛을 공부한 사람이었습니다. 동시에 르네상스의 색채를 사랑했습니다. 빛과 색을 섬세하게 반영할 수 있는 동판 위에 유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시리즈를 그려 넣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아무래도 예수께서 손을 들고 계시는 모습입니다.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멈춤이 느껴집니다. 산에서 군중들 사이에 앉으신 예수께서는 세상의 지혜와 차원이 다른 말씀을 연달아 전하셨습니다. 이른바 산상 수훈입니다. <팔복> 시리즈를 마친 뒤 <세상의 소금> 이야기로 경종을 울리신다고 상상해 봅시다. 말씀이 살아 있습니다. 안테나 연결되듯 하늘을 가리키는 손은 진리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군중의 표정에 주목했습니다. 산상수훈은 보통 구름떼와 같은 군중이 모인 장면을 연출하기 마련이지만, 작가는 이 복된 말씀을 현장에서 처음으로 듣는 사람들의 표정에 관심을 뒀습니다. 스무 명이 넘는 얼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기 다른 표정입니다. 경외하고 호기심을 갖고 의심합니다. 간절한 눈빛도 있는가 하면 멍하니 정지된 생각도 보입니다. 같은 말씀을 영접해도, 우리는 각자 달리 듣습니다. 삶의 자리가 다르기에, 서 있는 자리도 다르고, 들림도 보임도 다릅니다.
작품의 색은 오묘합니다. 창백함과 온기가 공존해 있습니다. 르네상스풍의 원색들이 화폭을 군데 군데 채색하고 있습니다. 배경은 서늘합니다. 램브란트에게서 빛을 다루는 법을 배운 작가의 기억이 색과 색 사이를 가릅니다. 로마에서의 젊은 날, 그는 빛의 신성함을 알아차렸습니다. 지상의 색이 제아무리 형형색색일지라도, 하늘로부터 감싸지는 빛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영적 임재의 거룩한 순간을 색과 빛의 이질감으로 표현했습니다.
군중들에 둘러싸인 찰나와 같은 시간, 그 짧지만 겹겹이 쌓인 말씀의 향연의 여운은 오늘 이 작품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할 것인지…’ ‘하늘로 부터 받은 빛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는지…’ 산상 수훈, 그것은 “칼의 복음”입니다. 베이고 아프지만 연단의 시간이 지나 상처가 아물었을 때 비로소 단단하고 견고한 복음의 증인이 됩니다. 명령이자 동시에 은총입니다. 빛의 은총을 입은 자에서 더 나아가 빛을 비추는 자로 살게 될 숙명입니다.
다시 작품을 봅시다. 예수님이 사랑스럽게 바라보셨을 군중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천천히 읽어봅시다. 어떤 사람이 소금이 되었을 지, 혹은 빛이 되었을 지. 작가는 유치한 대답 대신 우리에게 질문을 건넵니다. ‘당신은 어디에 서 있습니까?’ ‘당신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까?’
산 위의 마을은 숨겨질 수 없습니다. 등경 위에 놓인 등불은 집 안 모든 이를 비춥니다. 우리의 착한 행실을 보고 사람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라는 그 명령은, 오늘도 유효합니다. 청결한 마음으로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답할 날을 꿈꿉니다. “네, 듣고 있습니다.” “네, 보고 있습니다.” “네,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말씀과 이미지를 상상하며 함께 묵상합시다.
• 블로흐의 그림 속 군중들처럼, 나는 지금 주님의 말씀 앞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습니까? 경외하는 자입니까, 의심하는 자입니까, 아니면 간절히 받아들이려는 자입니까?
• 내 삶에서 소금의 짠맛이 희미해지고 있는 영역은 어디이며, 등불을 됫박으로 가리고 있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손 모아 기도합시다.
주님, 저를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부르셨지만 여전히 두려워 숨고 맛을 잃어가는 연약한 종을 불쌍히 여기소서. 오늘 이 작품을 통해 말씀하신 그 음성에 "네"라고 응답하며, 하늘로부터 받은 빛을 세상에 비추는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저를 연단하시고 견고케 하소서.
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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